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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맞춤법을 없애자 (3) / 김진해

등록 2021-02-22 09:15수정 2021-02-22 09:24

전북 고창군 심원면 세계프리미엄 갯벌생태지구에 최근 설치된 주꾸미 미끄럼틀 조형물. 고창군 제공
전북 고창군 심원면 세계프리미엄 갯벌생태지구에 최근 설치된 주꾸미 미끄럼틀 조형물. 고창군 제공

가짜 소설 <쭈꾸미>의 한 대목. “오랫동안 투정을 부려 ‘짜장면’이 표준어가 되었다. 우리 ‘쭈꾸미’도 표준어로 인정받기 위해 상소문을 올리자!”(‘쭈꾸미’는 비표준어).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해진 원칙을 유지하고 적용하려고 한다. 만 18살에서 하루라도 모자라면 투표를 할 수 없다. 이게 국가 행정의 특징이다. 일관성! 이 원칙을 말에도 적용해왔다. 하지만 원칙의 뒷배가 든든하지 않다. ‘예컨대’가 맞나, ‘예컨데’가 맞나? ‘예컨대’가 맞다. 이유는? 옛날부터 그렇게 썼으니까.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서도’에 쓰인 ‘-지만서도’도 비표준어다. 이유는? 자주 안 쓰여서. ‘널판자, 널판때기, 널빤지’는? 모두 표준어. 다 자주 쓰여서. ‘겨땀’은 비표준어다. ‘곁땀’이 표준어다. 이게 표준어니까!

맞춤법을 없애자는 주장은 결국 ‘표준어’를 없애자는 것이다. 표준어를 정하는 주체를 국가에서 시민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표준어에 대해 말들이 많으니 국가는 ‘복수 표준어’라는 묘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 해방 이후 최고 희소식인 ‘짜장면’의 표준어 등극. 2011년 일이다. 10년 동안 5회에 걸쳐 74개가 표준어로 바뀌었다. 말은 날아다니는데 국가는 느리다. 심의회 횟수를 늘리고, 복수 표준어를 확대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게 답이다.

말에는 저절로 질서가 생기고 관습이 만들어지고 하나로 정착하는 기질이 있다. 사람처럼 각각의 여정과 우여곡절이 있다. 말이 모이는 곳은 한 사회의 꽃인 사전이다. 언제까지 ‘쭈꾸미’들처럼 왕의 교지를 기다릴 텐가.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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