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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즈모폴리턴] ‘가짜뉴스’ 규제의 최대 피해자 / 신기섭

등록 2021-03-04 16:09수정 2021-03-05 02:08

신기섭ㅣ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이 기사의) 원자료는 해킹을 통해 얻은 것일 수 있다.” 페이스북과 함께 대표적인 소셜미디어로 꼽히는 트위터가 최근 미국 온라인 매체 <그레이존>의 기사 소개 트위트에 이런 경고 딱지를 붙였다. 이 기사는 러시아 정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영국 정부의 비밀 선전 활동에 공영 방송사 비비시(BBC)와 다국적 미디어 기업 로이터가 참여했다고 폭로하는 내용이다.

트위터는 다른 이용자가 이 기사를 소개하는 트위트를 작성할 때도 같은 내용을 담은 경고창을 띄웠다. 경고창에는 “트위터가 믿을 만한 정보가 유통되는 장소가 되게 도와달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뉴스의 신뢰성에 대한 이례적인 개입이다. 이는 트위터가 최근 바꾼 ‘해킹된 자료’ 관련 정책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들의 거짓 정보 차단 시도는 지난 1월6일 미국 극우 세력의 의사당 난입을 계기로 한층 강화됐다. 이 시도의 정점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을 중지시키고, 애플·구글·아마존이 극우 세력이 애용하는 소셜미디어 ‘팔러’를 차단한 조처다. 특히, 팔러에 대한 대응은 아주 빠르고 적극적이었다. 애플과 구글이 팔러 앱을 자사의 앱스토어에서 삭제하고 아마존이 웹 서비스를 중단함으로써 팔러는 순식간에 온라인에서 사라졌다. 서비스 재개까지는 한달 이상이 걸렸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력과 선동을 차단하는 조처 자체를 비판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온라인을 지배하는 기업들이 자체 판단만으로 특정 미디어를 차단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 제기는 적지 않다. 트위터의 ‘해킹된 자료’ 경고는 이런 지적이 과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번 일이 더욱 논란이 된 것은 경고 대상 기사의 내용 때문이다. <그레이존>의 기사는 ‘어노니머스’라는 해커 집단이 공개한 영국 외교부 자료를 바탕으로 영국 외교부가 비밀리에 러시아 정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활동을 했다고 폭로하는 내용이다. 이 작업에는 비비시 방송사의 비영리 국제 자선 조직 ‘비비시 미디어 액션’과 미디어 그룹 ‘톰슨 로이터’의 ‘톰슨 로이터 재단’이 참여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그레이존>은 “러시아 언론인 훈련, 러시아 내 네트워크 구축, 러시아어권 지역 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우호 분위기 확산을 원하는 영국 정부로부터 로이터와 비비시가 최근 몇백만달러짜리 계약을 수주했다”고 폭로했다. 또 “비비시 미디어 액션은 톰슨 로이터 재단, 정보 자문 기업 ‘액티스 스트래티지’와 함께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에서 활동하기 위한 제안서를 정부에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톰슨 로이터 재단이 ‘비밀 활동’에 참여했다는 추정은 부정확한 것”이라는 재단 대변인의 해명도 담았다.

온라인 매체 <매셔블>은 이 사건을 전하면서 “지난 10년의 중요 언론 보도 중에는 트위터 기준으로 ‘해킹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테드 크루즈 미국 상원의원 부인의 유출된 문자메시지를 근거로 크루즈 의원의 멕시코 여행 행태에 대해 보도한 <뉴욕 타임스>의 최근 기사에는 트위터가 이런 경고를 붙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짓 정보가 넘쳐난다며 ‘가짜 뉴스’ 규제를 옹호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보여주듯, 거짓 정보 규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비주류의 다른 목소리가 될 위험이 아주 크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떤 이야기가 퍼지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이야기가 차단당하는지다.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다양한 뉴스와 시각을 억제하지 못하게 할 규제 장치가 가짜 뉴스 규제 못지않게 필요한 이유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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