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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LH 직원 ‘땅투기 의혹 제보’는 왜 언론으로 가지 않았을까

등록 2021-03-14 11:26수정 2021-03-15 02:40

[강준만 칼럼] ‘제보 저널리즘’을 위하여
9일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 연합뉴스
9일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 연합뉴스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지난 3월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기자회견 이후 ‘수도권 3기 새도시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고 있다. 직업병 탓일까? 나는 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내내 “그간 언론은 뭘 했지?”라는 의문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 의문은 “언론의 기존 취재 시스템과 관행, 이대로 좋은가?”라는 의문으로 발전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투기 의혹에 대한 제보를 받아 조사를 벌였다고 했는데, 왜 제보가 좀 더 일찍 언론으로 가지 않았을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일까? 평소 언론의 전체 기사 가운데 제보에 의한 기사의 양은 얼마나 될까? 언론은 주로 정부와 정치권의 발표를 받아쓰면서 각자의 색깔에 따라 윤색을 하는 수준에 머무른다고 해서 ‘발표 저널리즘’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간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기자단의 폐쇄성 문제가 활발히 거론돼 왔지만, 이는 중요한 문제일망정 ‘받아쓰기의 공정성’을 따지는 수준의 개혁은 아닐까?

전반적으로 한국의 엘리트 계급은 각종 연고를 중심으로 끼리끼리만 어울린다. 이들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좁다. 이들이 민생에 무관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평소에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선 민생을 알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민생을 주요 의제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언론은 평소 민생을 외친다. 그럼에도 왜 민생의 현장은 멀리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목숨을 걸듯이 집중하는 걸까?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진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중요한 뉴스가 많이 나오는데다 비교적 저렴한 취재 비용으로 뉴스를 양산해낼 수 있기 때문일 게다. 말이 좋아 민생이지 민생의 현장을 취재의 대상으로 삼기는 매우 어렵다. 이렇다 할 뉴스거리를 찾아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취재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수지 타산이 맞질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이 그런 민생 뉴스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새도시 땅 투기 의혹’처럼 독자들의 피를 끓게 만들 정도의 분노와 뜨거운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뉴스는 예외적인 것으로 보는 게 옳다. 평소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들은 잘 아실 게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사가 누군가를 향해 독하고 자극적인 비난을 퍼부었다고 알리는 기사엔 댓글이 많이 달린다. 반면 각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가 없는 민생 관련 기사에 댓글이 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나는 언론이 제보의 의미와 가치를 재평가해주기를 바란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겠지만, 우리는 사석에서 명백한 비리이거나 비리에 가까운 일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저질러지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물론 그걸 직접 목격한 사람의 증언이거나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말이다. 우리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라는 식으로 달관한 듯한 자세를 취한다. 괜히 놀라움을 표현했다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라는 핀잔을 듣기 마련이다.

그런 증언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대부분 뉴스 가치가 없거나 약하다. 언론에 제보해봐야 비웃음만 사기 십상이다. 뉴스 가치가 좀 있다고 생각해도 제보하기는 어렵다. 인간관계 등의 개인적인 문제도 있는데다 한국은 ‘공익제보자’를 탄압하는 사회가 아닌가. 정치권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할 땐 공익제보자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다가도 자신들에게 불리할 땐 공익제보자를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 만들곤 했으니, 누가 감히 나설 생각을 하겠는가.

언론이 제보의 의미와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건 ‘발표 저널리즘’ 체질의 연장선상에서 곧장 뉴스가 될 수 있는 제보가 아니면 무시해버리는 기존 관행을 뒤엎어야 한다는 뜻이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제보를 환영하고 유도하면서 취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무턱대고 민생 현장을 탐사하는 것보다는 취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은가.

1970년대 중반 미국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는 대다수의 사람이 친한 친구가 아닌 ‘느슨한 관계’로 맺어진 아는 사람을 통해 취업한다는 경험적 증거를 제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친한 친구와 지인들은 동질적인데다 행동반경이 비슷한 반면, 약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은 다양성이 두드러져 다른 행동반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기자들 스스로 자신이 주로 노는 물의 영향도 의심해봐야 한다. 자신이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전반적으로 한국의 엘리트 계급은 각종 연고를 중심으로 끼리끼리만 어울린다. 이들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좁다. 이들이 민생에 무관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평소에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선 민생을 알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민생을 주요 의제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기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민생의 현장을 뉴스의 화수분으로 여기는 ‘제보 저널리즘’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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