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엄마를 보러 간다. 꽃을 사 갈까? 괜한 돈 썼다고 야단맞을 게 뻔하다. 화분이면 날마다 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말도 시킬 것이다. 어느 날 꽃이 피면 좋아할 것이다. 아픈 허리를 잡고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그 꽃을 보며 봄 냄새를 맡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꽃 화분을 파는 곳은 너무 멀다. 어쩐다?
며칠 전 강아지들 산책 다녀오는 길이었다. 지난여름 호박 몇개 따 주신 마을 아줌마와 마주쳤다. 인사차 내가 물었다. “뭐 하세요?” 그녀는 대답 대신 “산책 갔다 와요?” 하고 되레 물었다. “네. 근데 여기서 뭐 하세요?” 그곳은 그녀의 집 근처가 아니었다. “응, 냉이 캐지.” 내가 또 물었다. “벌써 냉이가 나와요?” 한 손에는 검은 비닐을, 다른 한 손에는 호미를 든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지금 한창이지.”
겨울을 좋아한다. 추울수록 좋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맘때엔 겨울이 너무 길다고 느껴진다. 날이 조금 따스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찬 바람이 불고 눈비가 섞여 내렸다. 몸을 으스스 떨며 산책길에 주워 온 나뭇가지로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어느새 잠이 들었을까? 햇살에 눈이 부셨다. 이불을 박차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감자, 당근, 쵸코가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세상에 너희처럼 한결같이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있을까? 대충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을 먹은 후 비닐봉투 하나와 칼을 챙겼다. 집을 나서려는데 남편이 어디 가냐고 묻는다. 나는 집 아래 냉이 캐러 간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아침에 거기서 뭘 열심히 캐던데” 한다. 아차, 내가 한발 늦었구나. 그래도 집을 나섰다. 내려가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냉이 이미지를 보았다.
다행히 냉이가 남아 있었다. 땅도 촉촉해서 칼이 잘 들어갔다. 쭈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햇살이 따스해서 노곤해 왔다. 정말 봄 같았다. 요 며칠 계속 목 디스크로 아팠다. 뒷목이 아프니 머리도 아프고 어깨가 쑤시고 팔과 손도 저렸다. 만사 의욕이 떨어졌다. 누워서 뉴스를 보니 거꾸로 가는 세상의 일들에 가슴이 더욱 갑갑했다. 햇빛 아래서 잠시 숨을 놓는다. 화분 대신 엄마에게 냉이를 가져가련다. 내가 캔 냉이로 엄마는 이 따스한 햇살을, 이 부드러운 바람을 국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게 봄을 먹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선물이다.
“뭐 해?” 나를 봄꿈에서 깨운 건 동네 책방 언니였다. “어, 냉이 캐.” “냉이가 어떻게 생겼는 줄 알아?” “뭐 대충. 이렇게 생긴 거 아니야?”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방금 캔 냉이를 보여주었다. “그거 냉이 아닌데.” “아니라고?” 언니가 웃으며 친절하게 말했다. “응. 그건 지칭개야. 하긴 봄에 땅에서 나오는 풀은 거의 다 먹어도 된다더라.” 두어 발자국을 가던 언니가 덧붙였다. “봐. 이게 냉이야. 여기 많네.” “아이고, 언니 아니었으면 딴것만 열심히 캤을 뻔했네.” “아, 그리고 왜 칼로 그러고 있어? 호미로 캐야지. 호미 없어?” “있는데, 우리 강아지들 똥 치우느라 더러워.” 언니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따라와, 빌려줄게.” 언니의 긴치마가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지칭개. 검색해보니 피를 맑게 하고 고혈압에 좋단다. 항암작용도 한단다. 고혈압에 좋다니 엄마에게는 딱이다. 대야에 물을 받아 지칭개와 냉이를 여러 번 씻었다. 씻은 냉이와 지칭개를 물이 빠지라고 테라스 위에 널어놓았다.
오후에 장 보러 가는 길에 고양이가 깔려 죽은 것을 보았다. 차에 깔려 녹두전보다 더 납작해진 두꺼비의 시체가 널브러졌다. 초록 피가 흥건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날도 풀리기 전 대형트럭의 행렬이 도로를, 마을을 달린다. 또 어느 산의 살점이 뜯기고 있는가?
봄이 길을 나섰다. 새싹보다 빠른 봄이 대형트럭 위에 실려 온다. 꽃봉오리보다 빨리 인간의 욕망을 실은 봄이 달린다. 중앙선을 넘어 질주한다. 흙먼지를 뿌리고 돌을 떨어트리고 달린다. 욕심의 무게로 삐척이며 달린다. 새싹 봄이 파이고 시멘트 봄이 솟는다. 50번째 맞는 나의 봄은 해가 갈수록 처형당한다. 이제 막 길을 나선 봄이 벌써 다 가도록 공사 차량은 대기를 가르며 굉음을 낼 것이다.
봄이 차마 오기 전에 이 땅에서는 차가운 차별의 칼에 누군가 바람의 전설이 되었다. 어른의 폭력에 아이가 기어이 오지 못한 봄을 등졌다. 저기 미얀마에서는 삶을 빼앗긴 봄이 오열한다.
나는 물 빠진 냉이와 지칭개를 거두어들인다. 붉은 해가 서산을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