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내 이름은 웃긴다. 발음이 절지동물과 닮아 별명이 ‘왕지네’였다. 모르는 이에게 이름을 불러주면 열에 아홉 ‘진혜’나 ‘진회’로 적는다. “‘바다 해’ 자입니다”라거나 “해바라기 할 때 해 자입니다”, “‘ㅕㅣ’가 아니라 ‘ㅏㅣ’예요”라 해야 한다. 어감도 묵직하거나 톡 쏘는 맛이 없어서, 줏대도 없고 집요함도 모자란다. 이게 다 이름 탓이다!
그러니 이름을 바꾸어야 할까? 우리 사회는 걸핏하면 이름을 바꾸던데. 사람들 반응이 시들하고 전망이 안 보이고 시대에 뒤처진 느낌일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름 바꾸기다. 회사명, 주소명, 건물명, 학과명, 가게명, 정당명, 정부 부처명. 불합리를 바로잡고 합리성과 혁신 의지를 듬뿍 담아! 한국 현대사는 간판 교체사이다.
이름 바꾸기는 연속성의 거부이자 과거와 단절하려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대부분 근본적이지 않고 선택적이라는 게 문제다. 실패하고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과거만 지목될 뿐.
모든 이름에는 이름의 질감이 있다. 이름을 그대로 두면 부끄럽고 불합리하며 분했던 순간도 도망가지 못한다. 나는 그 질감이 좋다. 그 부끄러움과 불합리가 좋다. 우여곡절을 겪는 의미를 같은 이름 안에 쌓아 놓는 것. 의미는 시시때때로 변하는데, 이름마저 자주 바뀌면 어지럼증이 심해진다. 나는 문화라는 게 ‘이유는 잘 모르지만, 옛날부터 그렇게 써 왔어’라고 말하는 거라 생각한다. 단절은 세탁과 표백의 상큼함과 뽀송함을 줄지는 몰라도, 역사의 냄새와 질감을 회피하게도 만든다. 이름 바꾸기를 성과로 내세우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