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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윤석열은 생각하지 마

등록 2021-03-17 16:01수정 2021-03-18 02:40

요즘 대선 지지율 1위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보면서, 코끼리를 떠올린 건 비슷한 이유에서다. 야당과 보수 언론의 ‘윤석열 띄우기’야 그렇다 쳐도, 윤석열 전 총장을 향한 수많은 비판도 하나의 단어를 벗어나지 못한다. 바로 ‘검찰’이다. 그런데 윤석열을 ‘검찰’이라는 칼로 찌르는 건, 코끼리를 부정하기 위해 코끼리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6일 청와대 앞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투기 규탄 기자회견 뒤 전수조사, 농지법 개정 등이 적힌 종이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6일 청와대 앞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투기 규탄 기자회견 뒤 전수조사, 농지법 개정 등이 적힌 종이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2004년 펴낸 책의 제목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정한 이유는 서문에 잘 나와 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인지과학 입문’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내준 첫 과제는 항상 이것이었다고 한다.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코끼리를 부정하려면 먼저 코끼리의 인상, 몸집이 크고 코가 길며 귀가 펄럭이는 따위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레이코프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명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프레임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했다. 그가 책을 펴낸 시기는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미국 민주당이 충격에 빠져 있을 때였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계속 지는 이유를 레이코프는 ‘공화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대선 지지율 1위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보면서, 코끼리를 떠올린 건 비슷한 이유에서다. 야당과 보수언론의 ‘윤석열 띄우기’야 그렇다 쳐도, 윤석열 전 총장을 향한 수많은 비판도 하나의 단어를 벗어나지 못한다. 바로 ‘검찰’이다. ‘어떻게 전직 검찰총장이 정치에 뛰어들 수 있나. 그러고도 검찰 중립을 말할 수 있나’라는 본질적인 비판에서부터 ‘뼛속까지 검찰주의자’ 또는 ‘전형적인 정치검사’라는 비난도,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해 검찰권력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결국은 ‘검찰’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윤석열을 ‘검찰’이라는 칼로 찌르는 건, 코끼리를 부정하기 위해 코끼리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이 정치를 위해 검찰총장직을 그만둔 지금 시점이 역으로 검찰개혁의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도 결국은 ‘검사 윤석열의 공과’와 그가 내세우는 ‘검찰과 사회정의’라는 프레임을 자꾸 저울질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란 덫의 대표적 사례로 리처드 닉슨 사례를 들었다.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압력에 시달리던 닉슨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 연설을 듣는 순간 미국민들의 뇌리엔 ‘사기꾼’이란 단어가 박혔고 ‘닉슨은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윤석열에게 열광하든 또는 증오하든, 핵심은 그가 지금 대한민국의 핵심 문제를 정확히 알고 그걸 해결할 만한 자격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다. 단지 ‘윤석열’을 화제에 올린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걸 깨닫게 되는 건 아니다. 이건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우리 사회 현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분명하게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현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투기 의혹 사건으로 불거진 불공정 문제와 이것이 상징하는 사회적 격차의 확대다. 코끼리의 허상은 생각의 틀을 바꿔야 깰 수가 있다. 그 틀 안에서의 논란은 허상만 키울 뿐이다.

집권 5년차로 접어드는 현 정부엔 지금이 절체절명의 시기로 보인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에 있고, 1년 뒤엔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오래전부터 ‘레임덕’을 주문처럼 외는 보수언론 및 야당의 공격이야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이렇게 민심이 출렁이는 건 현 정부 들어선 처음이 아닐까 싶다.

토지공사 직원 몇명의 땅투기로 끝날 뻔한 사건이 정치권을 흔들고 정국을 바꿀 만한 폭발을 일으킨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부동산과 일자리 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특히 부동산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실망감이 토지주택공사 사건을 계기로 표면화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대응하려면 정부여당은 부동산을 비롯한 민생 문제에 모든 힘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그에 걸맞은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지금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현 상황의 본질에서 비켜나 있는 것이다. 이래선 국민 머릿속의 코끼리 허상을 지울 수가 없다.

검찰개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 이슈가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과정에서 ‘정치인 윤석열’이 성장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토지주택공사 사건에 관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강조했다. 2016년 타오른 촛불의 가장 큰 의미는 국민 주권의 확인에 있다. 지금도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에 정확하게 응답하는 게 필요하다. 그게 부동산 문제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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