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생활비가 200만원이 넘고 몇달을 쉰 터라 이미 낸 빚이 1000만원이 넘었다. 그나마 300만원도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자율 할인을 받기 위해 학교장 도장을 받아야 한단다. 어디 부끄러워서 도장을 받겠는가.
텅 빈 초등학교 교실. 이정아 기자 (이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김슬기 | 방과후 강사
당시 나는 홀 서빙 아르바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고 한가하다 싶으면 주방의 일도 이리저리 해주곤 했다. 그런데 그게 하루가 되고 한주가 되고 이주가 되니 너무나도 당연한 내 일이 되었다. 시급 8590원짜리 나의 일은 홀 손님 상대의 주문과 서빙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주방 일을 도와드렸던 것인데, 어느 날 홀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너무도 바쁜 와중에도 쪽파 한 단을 내가 끝까지 다듬고 있었다. 손님이 부르면 가 주문받고 서빙하고 돌아오면 당연한 듯 한쪽 자리에서 쪽파를 다듬으라는 무언의 눈빛과 제스처…. 내가 주방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것인가? 가게 전체 관리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부당함에도 학교에서 연락받기 전까지 무언가를 해서 살아야 하기에, 그래야 월세를 내고 식료품을 사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기에 쉽게 그만두지 못했다.
아마도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월급을 받아도 카드사에서 꺼내 가기 바쁜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자기 코로나를 맞이하다 보니, 자신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가고 적금을 깨고 보험에서 대출을 받고 신용대출을 받고. 그런데 프리랜서는 신용보증이 안 되다 보니, 대출금액은 너무나 적고 금리는 높고…. 나의 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유는 하나였다. 학교가 마음에 걸려서였다. 가게에는 손님이 없다 보니 사장님 주변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본인들은 괜찮다며 술 한잔을 권하곤 했는데 나는 내가 거기 앉아서 술을 마셔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래서 두어번의 거절 후 아예 그만두겠다는 말을 건넸다.
다행히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학교에서 연락이 와 긴급돌봄으로 투입되어 오전에라도 학교 일을 하고 시급으로 급여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시급 1만5000원! 원래라면 웃어넘겼을지 모르겠지만, 시급 8590원짜리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고 보니 이게 얼마나 귀한 돈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나라에서 방과후 강사를 위해 대출을 해준단 소식을 들었다. 무려 거금 300만원이었다. 한달 생활비가 200만원이 넘고 몇달을 쉰 터라 이미 낸 빚이 1000만원이 넘었다. 그나마 300만원도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자율 할인을 받기 위해 학교장 도장을 받아야 한단다. 어디 부끄러워서 도장을 받겠는가. 결국 전국 강사 중 3%만 대출 신청을 했다는 이야기를 후문으로 듣고 쓴웃음이 나왔다. 대출금리 할인받으려면 내가 대출받는다는 사실을 학교에 알려야만 가능하다. 그것도 좋다. 2천만원, 3천만원 해준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300만원이라… 그 정도라면 차라리 현금서비스를 받겠다는 강사들이 주변에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그랬다. 차라리 내가 가진 보험에 약관대출이나 일부 출금을 선택하련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방과후 강사들이 돈이 많아서 그 대출을 거절한 줄 알더라. 우리 먹고살 만한가요?
평소 잘 모르다가 이번 코로나로 나의 직업적 위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리마저도 지켜보려고 간 아르바이트 자리, 그곳에서 삶의 고단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방과후 강사로 일하면서 학교 선생님들의 무시와 거만함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나의 직업에 만족하며 잘 적응하고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민낯을 이렇게 보여준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은 이게 끝이 아니다. 밤새워 이야기할 거리가 너무나도 많지만 커다란 일들만 기록해본다. 나는 무한 긍정으로 과거를 빨리 잊어가며 인생을 참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1인이다. 이럴 땐 나의 긍정 에너지가 조금 아쉽기도 하다. 조목조목 다 기억하면 여기에 쓸 글이 책 한 권 분량은 나올 텐데….
11월 수업을 시작하겠다는 학교의 반가운 소식과 함께, 수업 시간은 변경되고 수업 인원은 제한이 걸리고 수업 전후에 해야 할 방역 활동은 많아졌다. 사실 수업 준비를 위한 노력에 플러스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회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수업을 준비하는 10월에도 여전히 무급으로 일을 했다. 수업 준비는 당연한 것이라는 관행으로. 집에서 시간표를 다시 짜고 안내장을 만들고 수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안전수칙을 정하고 신청 학생 명단을 정리하고 학부모님들께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해마다 수상작만 <한겨레>에 실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견뎌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마다의 고충이 담긴 ‘노동일기’로서 응모작 몇 편을 더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