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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램자이어 논문 침묵하는 일본 언론 / 김소연

등록 2021-03-18 18:36수정 2021-03-19 02:4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매춘부라는 주장을 펴 비판을 받고 있는 마크 램자이어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하버드대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매춘부라는 주장을 펴 비판을 받고 있는 마크 램자이어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하버드대 자료사진

김소연ㅣ도쿄 특파원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 논문에 대한 논란이 한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일본 우익 성향인 <산케이신문>이 램자이어 교수 논문을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낸 뒤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학계에서도 비판이 거세다. “논문을 철회하라”며 서명, 심포지엄, 언론 기고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주요 외신들도 이 사안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시엔엔> <가디언> <뉴욕 타임스>, 중동의 <알자지라> 등도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이 국제적 반발에 직면했다며 상세한 내용을 전했다.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일본의 언론은 너무 조용하다. 일본에서 최대 부수를 발행하는 <요미우리신문>과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는 램자이어 기사를 한번도 다루지 않았다. 그나마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등도 지난 10일 일본 학계가 비판 기자회견을 했을 때 짧게 단신으로 다룬 정도다. 일본 언론만 보면 램자이어 사태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일본 언론이 침묵하는 데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의 관점에서 다루려면 뭔가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8월 <아사히신문>의 오보 인정이 큰 분기점이 됐다. 당시 이 신문은 ‘제주도에서 조선인 여성들을 사냥하듯 강제로 연행했다’는 요시다 세이지(2000년 사망)의 증언을 바탕으로 1980~1990년대 보도했던 16건의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에 야마구치현 동원부장으로 알려진 요시다의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아사히는 ‘요시다 증언’이 불확실한 것이지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로 끌려간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익 세력의 공격은 만만치 않았다. 아사히가 오보를 하면서 별거 아니었던 ‘위안부’ 문제가 커졌고, 일본의 국익을 훼손했다는 논리는 빠르게 퍼졌다. ‘위안부’의 강제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있는데도, 우익들은 요시다 오보만 부각했다. 아사히 사장은 사퇴했고, 기자들에 대한 협박에 이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됐다.

우익들의 ‘좌표찍기’는 계속되고 있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 증언을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지금도 ‘우에무라=날조 기자’라고 공격받고 있다. 첫 보도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예정이던 대학과의 계약도 우익들의 방해로 취소됐다.

2019년엔 일본 아이치현 국제예술제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이 우익들의 협박으로 사흘 만에 전시가 중단됐다가 폐막 일주일을 앞두고 재개되는 일이 있었다. 전시를 결정한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지사는 우익들의 표적이 됐다. 지사를 퇴출하기 위해 ‘주민소환 운동’이 시작됐고, 43만5천여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최근 이 중 83%가 무효로 판명됐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서명하거나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이름도 다수 등장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사를 공격하기 위해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던 셈이다.

일본 전체로 보면, 이런 우익들이 소수일 수 있다. 하지만 다수가 침묵하는 속에서 결집된 소수는 강한 힘을 갖는다.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는 우익들의 공격에 대해 “일본에 위안부 문제는 부끄러운 과거로, 가능하면 지우거나 수정하고 싶은 주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침묵과 집요한 공격으로 지울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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