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은 입에 사는 도깨비다. 입을 열면 나타났다 닫으면 이내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상황에 따라 튀어나오는 말도 다르다. 하지만 문자는 말에 실체성과 형태를 덧입힌다. 옷을 입은 도깨비랄까. 문자와 표기의 체계는 말을 하나의 기계나 물건처럼 통일성을 갖는 실체로 만든다.
실체가 된 말은 규율이 되어 틀리면 불편해한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면 충분한데, 왜 ‘감사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라고 하나? 이치에 안 맞는데도 국립국어원에서는 ‘관행’이란 이유로 허용했다”며 씁쓸해한다. 방송에서 들은 ‘말씀 주시면’이라는 말도 거슬린다고 한다. “‘꼼장어’가 표준어가 아니라고?” “‘쭈꾸미’랑 ‘오돌뼈’도 틀렸다고?” “뭐? ‘겁나게’가 사투리라고?” 항의한다.
단골 복사집에서 ‘제본 다 되었읍니다’라고 보내온 문자를 받으면 반갑다. 나는 사람마다 말에 대한 기억과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이런 어긋남과 겹침이 좋다. ‘돐’이란 말도 그립지 아니한가. 북한말 ‘닭알’은 달걀을 다시 보게 한다.
문득 의문이 든다. 무엇이 바른가. 바르게 쓴다는 건 뭘까. 과거와 현재가 단절보다는 겹치고 뒤섞이는 말글살이는 불가능할까. 왜 우리는 하루아침에 ‘돐’을 버리고 ‘돌’을 써야만 하는 구조에 살고 있을까. 나와 다르게 쓰거나 바뀌는 말에 왜 이토록 화를 낼까. ‘올바르게 말하기’에 지나친 강박증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녹슨 양철문에 써놓은 ‘어름 있슴’을 보면 즐겁던데. 올바른 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잡종이듯 말도 잡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