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물리학은 남자가 더 잘하고 여자와는 잘 안 어울린다는 통설이 낡은 편견임을 다시 확인해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미국물리학회 학술지 <피지컬 리뷰 물리교육연구>에 실린 논문은 미국 대학에서 기초물리학 수업을 들은 학생 1만명의 시험 성적과 학점을 비교했는데, 젠더와 성적 사이에서 의미 있는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학 물리학과에 여성은 눈에 띄게 적다. 미국 물리학과의 여학생 비율은 여전히 20% 남짓에 머문다. 다른 자연과학들과 비교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공식 통계를 찾지 못했지만 국내에서도 30% 정도일 것으로 짐작된다. 왜 물리학은 여성의 진로 선택에서 인기가 낮을까?
지구촌 어디에서나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에 맞춰 <피지컬 리뷰 물리교육연구>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중동과 서아시아 이슬람권 나라에서 물리학과 여성 비율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란 공립대학들에서 여성은 학사와 석사 과정의 60%, 박사 과정의 47%를 차지하며 이집트 공립대학들에서도 학사의 60%가 여성이라고 보고된다. 물리 강의실의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과 아주 다를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저조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물리학을 선택하는 여성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뭘까? 논문 저자들은 이슬람권에서 물리 교육을 마치고 지금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물리학자 7명을 인터뷰하고서 교육 환경과 관련한 몇가지 요인을 짚었다.
먼저 이슬람권에선 어릴 적부터 남녀가 따로 교육받는 터라, 여학생은 남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교육 환경에 위축되지 않고서 물리학을 익힐 수 있다. 또래 친구보다 부모와 가족의 영향이 큰 문화에서 물리학은 남성적 학문이라는 선입견을 덜 의식하고 교육열 높은 부모의 지지를 받으며 물리학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물리학은 이슬람 신앙과도 조화를 이룬다. 또한 흥미롭게도 옷차림 문화가 중요하게 거론된다. 물리학의 정체성은 남성 물리학자의 이미지에 가깝고, 거기에 맞추지 못하는 여성성의 옷차림과 화장은 곧잘 핀잔의 이유가 되는데,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는 이슬람 여성의 수수한 옷차림은 이런 문제와 별달리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성이 물리학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저자들의 뜻은 이슬람 문화와 물리학이 잘 어울림을 강조하려는 데 있지 않다. 미국물리학회의 온라인 매체 <피직스>가 특집기사까지 마련한 것도 그런 취지는 아니다. ‘물리학의 남녀 불균형을 풀려면, 지금의 물리학 문화가 젠더 다양성에 얼마나 친화적인지를 되묻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논문과 특집기사가 전하려는 건 이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