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지난주엔 방송인이자 한글운동가인 정재환님께서 실명으로 “김지네씨, 잘 바써요”라는 재미난 댓글을 달았다. 헌신적인 한글운동가가 굳이 맞춤법을 어기며 쓴 것도 말걸기의 방식이다. 환영한다. 아마 ‘되었읍니다’, ‘돐’, ‘어름 있슴’에 대한 나의 과도한 포용주의와 과거지향적 정서, 또는 그간의 ‘언어자유주의적, 언어시장주의적’ 태도를 보고 내놓은 반응인 듯.
지난 칼럼은 말(표기법)의 잡종성을 가로막는 제도에 질문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제까지 썼던 철자가 하루아침에 바뀌고, 비표준어이니 쓰지 말라고 하다가 갑자기 오늘부터는 써도 된다는 과정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이다.
이 문제의 뿌리는 한글맞춤법에 있다. 맞춤법은 언어적 근대의 산물이다. 민족어라는 단일한 언어질서를 만들기 위해 동일성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모든 정체성과 차이를 배제했다. 언어적 근대는 지역, 세대, 성별, 계급, 직업의 차이에 따른 말의 잡종성을 외면해야 가능하다. 표준어는 비표준어를 배제한다. 표준어 제정 권한을 국가나 엘리트들에게 집중시킨다. 지금도 똑같다.
언어적 근대를 넘어서자. 우리 시대는 말의 잡종성을 어떻게 전면화할지가 과제다. 일단 성문화된 맞춤법을 없애고 공통어의 결정권을 시민과 사회적 역량에 맡기자는 것이다. 맞춤법을 고치면 되지 않냐는 주장은 비본질적이다. 국가가 ‘이걸 표준어로 해줄까 말까’를 정하는 방식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글운동 하시는 분들께 부탁한다. 말의 단일화보다 말의 다양화를 위해 더 애써 달라. 말은 구름 같아서 우여곡절을 겪을 뿐, 살고 죽는 문제는 아니다. 릴랙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