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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인권 강조 바이든·스가, 이산가족 상봉부터 / 권혁철

등록 2021-03-30 20:24수정 2021-03-31 02:43

권혁철 ㅣ 논설위원

나는 남북관계를 20년 넘게 취재하고 공부하고 있다. 남북관계 관련한 이야기들은 익숙한 편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이산가족 문제를 잘 안다’고 착각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세차례 취재했고, 납북자 가족을 포함한 남한 내 다양한 이산가족을 만나 기사를 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라고 하면 남북 분단과 전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만을 떠올린다. 최근 일본 사진작가 하야시 노리코가 쓴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를 읽고, 이산가족 문제가 우리 민족만의 비극이 아니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재일동포 9만3340명이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이란 이름으로 북한으로 갔다. ‘일본인 아내’ 1830명도 재일동포 남편과 함께 북한으로 떠났다. 조선인 아내를 따라 북한으로 간 일본인 남성도 소수 있다고 한다.

하야시 노리코는 2013~2018년 북한을 11차례 방문해 일본인 아내 9명을 인터뷰했다. 일본인 아내들의 가족은 조선인 남편과의 결혼을 막았고, 남편과 같이 북한으로 가는 것도 반대했다. 심지어 일본을 떠난다는 사실을 부모에게도 알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한 일본인 아내는 “3년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그 후로도 쉽게 일본과 북한을 오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에 온 뒤 일본에 있는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어려웠고, 길게는 60년가량 일본에 있는 가족을 못 만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차례 ‘일본인 아내 고국방문사업’으로 43명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00년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 등으로 북-일 관계가 얼어붙어 이 사업은 중단됐다.

일본인 아내들은 부모와 형제 생사도 모르고, 고향도 못 가는 이산가족이 됐다. 남북 이산가족을 취재할 때 들었던 안타까운 사연들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일본인 아내들도 이산가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국내 이산가족 중 고령자가 많아 ‘10년가량 뒤 이산가족 대부분이 숨지면 이산가족 문제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지금 80대, 90대인 일본인 아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 국민들은 이들이 오래전 남편을 따라 제 발로 북한으로 갔다는 이유로 관심이 없다. 이대로라면 북한에 사는 일본인 아내 문제는 몇년 뒤면 역사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북한 인권 문제의 전부인 양 행동한다. 이산가족은 분단이 빚은 대표적인 인도주의·인권 문제다. 일본인 아내들은 “죽기 전에 고향 땅을 한번이라도 밟고 싶다”고 호소한다. 일본인 아내들은 엄연히 일본 사람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손놓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이산가족은 미국에도 있다.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은 2001년 기준 약 10만명으로 추산됐는데, 당시 대부분 60~70대였다. 현재 생존한 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남북 이산가족 공식 상봉은 그동안 21차례 있었지만, 북-미 이산가족 상봉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미국 이산가족 상봉의 기본 성격은 미국 시민과 북한에 있는 가족의 재회다. 미국 정부가 당연히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한다. 코로나19로 대면 상봉이 어렵다면, 편지 교환, 영상 메시지 등으로 생사 확인을 먼저 할 수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산하 민주·공화당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남북과 북-미 이산가족 상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선 후보 시절 국내 한 언론사에 보낸 기고문에서 북-미 이산가족 재회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다른 북한 인권 현안에 견줘 남북, 미국, 일본의 부담이 덜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을 넘어 북-미, 북-일까지 넓히면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 사안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력을 적극 발휘한다면 북한이 제기하는 ‘근본문제’에 대한 발언권이 더 커질 것이다. 남북관계에서처럼 이산가족 상봉이 미국과 북한 사이 대화 물꼬를 트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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