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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4·3과 제주어 / 김진해

등록 2021-04-04 18:09수정 2021-04-05 02:38

‘육지’와 멀리 떨어진 게 고유성을 지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4·3사건으로 섬사람들은 고립되고 실어증에 걸린다. 제주어는 반란의 언어, 금지된 말. 참상에 대한 증언은 고사하고 제주 사람 티가 나는 말을 쓰는 것조차 꺼렸다. 육지에 나갈 때, 섬말은 바다에 내던져졌다.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사라져 가는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등록했다. 4단계는 소멸 직전의 언어로, 노인들만 뜨문뜨문 쓴다는 뜻이다. 말의 표준화와 미디어의 전국화는 지역어의 위기와 소멸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제주에는 제주어를 기록, 보존, 활성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자긍심은 제주어를 기록하기 위한 별도의 ‘제주어 표기법’을 갖고 있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육지에서는 진작에 버린 ‘아래아’(ㆍ)도 포함되어 있다. ‘아래아’는 만들어지고 얼마 안 지나 소릿값이 바뀌기 시작한 글자다. 단어의 첫소리에서는 주로 ‘ㅏ’로 바뀌고(ᄂᆞᆷ→남), 첫소리 아닌 자리에서는 ‘ㅡ, ㅓ, ㅜ’로 변했다(하ᄂᆞᆯ→하늘, 다ᄉᆞᆺ→다섯, ᄂᆞᄅᆞ→나루). 단어마다 달라지는 발음을 어떻게 표시할지가 숙제이지만, 제주어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제주어에 ‘아래아’ 발음이 살아 있으며, 이것이 제주어의 독특함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제주어가 복권되길 바란다. 딴 지역보다 조건이 좋다. 자율성을 갖춘 자치도이기도 하고, 제주어 복권을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 도도하게 버티고 있다. 집과 학교에서, 말로도 글로도 끈질기게 써서 제주어가 하나의 ‘언어’로 활짝 피어나길 빈다. 제주어 만세!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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