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3월30일치 25면에 실린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안영춘 ㅣ 논설위원
눈송이는 굵고 다습해 보였다. 어느덧 서울 벚꽃도 얼추 졌는데, 불과 열흘 전 <한겨레> 여론면엔 폭설 사진이 실렸다. 기상청도 놓친 ‘꽃샘 눈’ 풍경 사진인가 했더니, 청와대 분수대 앞 피케팅 사진이었다. 우산을 쓴 채 피켓에 쌓인 눈을 쓸어내는 이의 손 아래로 ‘세월호’ 세 글자가 또렷했고, 나머지 글귀는 눈에 덮여 희부옇다. “급선회 원인과 승객 구조 방기의 이유를 규명하라!” 급작스러운 강설에 방금 샀는지, 우산 끝엔 보증서 꼬리표가 매달려 있었다. 사진 제목은 ‘세월호 7주기에 부쳐’. 1월28일에 촬영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더는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고 맞을 수 없게 된 4월의 문턱에서, 지난겨울 사진이 지면에 소환된 거였다.
‘철 지난’ 사진이긴 하지만, 세월호의 ‘오늘’을 포착한 이만한 시각적 메타포도 흔치 않을 것 같다. 이른바 ‘거리의 사진’에 요구되는 미덕을 두루 갖춘 덕분인 듯하다. 탁월한 거리의 사진은 순간과 우연의 얼굴로 포착한 시대적 알레고리다. 그래서 1월28일 하늘이 짙은 잿빛이 아니라 차갑고 팽팽한 푸른빛이었어도, 사진의 파토스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무겁게 내려앉은 슬픔이 아니라 아득해서 막막한 슬픔을 자아낼지 모른다. 내 눈에는 우산 끝에 매달린 꼬리표도 눈에 덮인 피켓 글귀만큼이나 간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흩어진 파편들이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다층적인 서사의 그물로 엮여 있음을 암시하는 유력한 단서다.
거리의 사진은 스튜디오 사진과 달리 시각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할 수 없다. 그 대신 스튜디오 사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실에 핍진하다. 그렇게 구성된 저 사진의 알레고리는 절대적 슬픔에 가깝다. 잿빛을 짙게 머금은 하늘도, 굵고 다습한 눈송이도, 눈에 덮여 글귀가 가린 피켓도, 우산 끝에 매달린 꼬리표도, 그 우산 하나로 폭설에 맞선 사람도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의 절대성을 재현하는 요소다. 그러나 그 슬픔이 절대성에 다가갈수록 뜻하지 않은 아포리아(곤경)와 마주칠 가능성도 커진다. 절대적 슬픔이 기대하는 진실 앞에서 엄밀한 과학적 진실의 공간은 협소해진다. 사진은 그런 현실까지 우연인 듯 포착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과학적 진실은 절대적 슬픔 앞에서 위태로웠다. 눈에 덮인 글귀, “급선회 원인과 승객 구조 방기의 이유를 규명하라!”는 절대적 슬픔이 과학적 진실과 대면하기가 얼마나 버거운지를 은유하는 것처럼 내 눈에 비쳤다. 집념 어린 탐사 추적 보도물을 여러 편 본 바로, 세월호의 급선회 원인은 조사에 참여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에 의해 과학적 진실에 깊숙이 다가갔다. 이 짧은 글에 온전히 옮길 수 없으나,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나 맹골수도에 이르러 급선회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정확한 항적 데이터와 실험 데이터, 그리고 조타장치의 일부인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장 상태와 전후 정황 등으로 엄밀히 설명된다.
생때같은 304명의 희생이 솔레노이드 밸브라는 한갓 작은 부품의 정비 불량에서 시발했다는 과학적 설명은 또 다른 차원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을 자아낸다. 절대적 슬픔의 당사자에겐 혈육의 참극 못지않게 받아들이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솔레노이드 밸브 고장에 따른 급선회 사례는 세계적으로 여럿 보고돼 있다. 선회만 하다 멈추거나 어딘가에 부딪치는 대신, 극도로 악화된 복원성 탓에 쓰러져 침몰한 것이 세월호였다. 세월호 참사는 중고 선박의 선령 제한 완화, 무리한 증개축, 과적, 고박 불량, 평형수 속이기, 무리한 출항 같은 맹목적 이윤 추구와 안전불감증의 파편들이 알레고리처럼 엮인 결과라고 과학은 말한다.
과학적 진실 추구의 대칭점에 ‘고의 침몰설’이라는 유사 과학이 번성하고 있다.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가설은 ‘유령선’이라는 괴담으로까지 진화했다. 그것은 알레고리가 되지 못한 한갓 파편이어서, 자기완결적인 서사나 과학적 반증에 대한 재반증이 불가능하다. 정작 희생자들은 도구화되고, 절대적 슬픔은 안전사회를 위한 애도로 승화하지 못한다. 그 폐해는 실질적이다. 7년이 지나도록 노후 선박의 과적과 고박 부실, 평형수 속이기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고의로 침몰을 유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7년 전 그날도, 예보에 없던 폭설처럼 세월호는 급선회했다. 화창한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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