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전국택배노조가 서울 상일동역부근에서 개별배송중단과 아파트에 배달될 800여개의 택배물을 쌓아놓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하나를 알면 백을 안다.’ 사람은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넘겨짚는 습성이 있다. 애당초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란 글렀다.
사람을 만나면 주로 얼굴을 본다. 다 보지 않고 눈을 본다. 관자놀이나 뒤통수, 귓바퀴는 잘 안 본다. 큰 점이 하나 있으면 그걸 곁눈으로 본다(점박이). 머리 모양이 특이하면 그걸 기억한다(노랑머리). 옷이나 장신구가 색다르면 그걸로 기억한다(‘저 반바지가 막말을 했어’). 행동 하나만 보고 인품을 평가한다. 젓가락질이 서투르면 ‘저런 것도 못하다니 볼 장 다 봤다’며 내친다. 예절이라는 게 타인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발달된 건지도 모른다.
말에도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는 일이 흔하다. ‘밥’이 모든 음식을 대신한다거나(‘밥 먹자!’), 가수명이 노래를 대신한다거나(‘요즘 방탄소년단만 들어’), 물건이 사람을 대신하기도 한다(‘버스 파업’).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일 때가 많다. ‘여기요, 저기요, 아저씨, 아줌마, 언니, 이봐요, 사장님, 선생님, 어르신’. 며칠 전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차량의 아파트 지상도로 출입금지를 풀어달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아파트 주민이 이들을 향해 시끄럽다며 ‘어이, 택배!’라고 불렀다. 전에도 ‘때밀이, 배달, 노가다’처럼 일이 사람을 대신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나 쓴다. 사람이 있다면 ‘○○ 아저씨, ○○ 아줌마’처럼 호칭을 붙인다.
호명은 누군가를 불러 세운다는 점에서 소통의 출발점이자 상대에 대한 규정이다. 그 짧은 호명 안에 당신의 품격이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