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결정하면서 공개한 정책 홍보물에는 방사성 물질 삼중수소(트리튬)가 귀여운 만화 캐릭터로 등장한다. 친근하고 천진난만해 보인다. 방류할 물에 담길 삼중수소의 안전함을 일부러 부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양 방류를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의 불안을 생각하면 귀여움은 아주 다른 세상에서 날아온 초현실적 존재의 느낌마저 준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정화 처리한 이른바 ‘처리수’의 안전을 거듭 약속했다. ‘처리수 포털 사이트’를 따로 운영하는 도쿄전력의 일문일답 자료에서 “처리수는 여러 설비를 이용해 방사성 물질 농도를 줄이고 위험을 줄여 탱크에 저장한 정화된 물”로 설명된다. 방류될 물은 이제 ‘오염수’가 아니며 정화된 물 ‘처리수’가 된다.
“인체와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처리수의 신분세탁은 62종 방사성 물질을 화학적, 물리적 방법으로 침전, 흡착, 여과하는 ‘알프스’(ALPS)라는 다핵종제거설비 덕분이라고 한다. 알프스 처리 전과 후를 보여주는 설명자료 그림에선 골칫거리인 오염수가 맑은 처리수로 변신한다. 삼중수소 캐릭터는 이렇게 처리된 물의 안전을 최종적으로 보증하는 상징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과 관행을 따르는 결정임을 강조하고, 또한 “해양오염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한다”는 약속을 거듭 다짐했다. 하지만 약속된 미래는 곧바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선 물음이 계속된다.
처리수가 안전하다면 육상 처리 방법은 왜 배제되는가,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되었나? 알프스 성능은 누가 어떻게 검증하는가? 원자력과 의학·해양생태계 전문가의 목소리는 골고루 반영되었나? 인체와 환경 영향 평가는 어떠한가? 물음은 또 있다. 과학기술 해법에는 크건 작건 불확실성과 남은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다뤄졌는가? 도쿄전력과 주한일본대사관 사이트의 자료에서 구체적인 증거, 데이터,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네이처>에 ‘증거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새로운 소통 방법을 제안하는 글이 실렸다. 불신과 논란 속에서 위험 상황을 관리하는 소통을 할 때 “보증되지 않은 확실성이나 깔끔한 이야기, 한쪽에 치우친 발표를 피하라, 설득하기보다 정보를 제공하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불확실성에 관한 정보도 필요하다. 신뢰는 이렇게 투명한 증거와 데이터를 통해 쌓인다.
삼중수소 캐릭터에 비판이 일자 일본 정부는 하루 만에 캐릭터 홍보물의 공개를 일시 중단됐다. 우리에게는 안전 약속을 선언하고 홍보하는 과학이 아니라, 실질적 증거와 데이터를 투명하게 드러내어 안심하게 해주는 책임 있는 과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