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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전임자의 정치행보와 새 검찰총장의 과제 / 박용현

등록 2021-04-29 16:40수정 2021-04-30 02:38

검찰총장 후보에 오른 4인. 왼쪽부터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구본선 광주고검장,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 검찰총장후보추천위는 29일 회의를 열어 이들을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했다. 박 장관은 이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연합뉴스
검찰총장 후보에 오른 4인. 왼쪽부터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구본선 광주고검장,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 검찰총장후보추천위는 29일 회의를 열어 이들을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했다. 박 장관은 이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연합뉴스

박용현ㅣ논설위원

새 검찰총장의 핵심적인 자격 요건과 소임은 무엇일까? 당연히 첫번째는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의지와 그 실행이다. 검찰의 독립성·중립성과 관련해 지금 가장 뜨거운 현안은 무엇일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 행보다. 차기 검찰총장은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해법을 제시하고 검찰의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헌법 교과서를 보면 입법·행정부는 정당정치를 통해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적 권력’인 반면, 사법부는 정당정치로부터 단절된 ‘중립적 권력’이라고 설명한다. 선거를 통한 권력 창출이라는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채 사법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누리려면 철저한 중립성이 대전제가 된다. 이는 검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검찰은 그 소속상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명령체계에 포섭되어 있지만 업무의 성격이 준사법적인 것”(헌법재판소)이기 때문이다. 검사가 법관에 준하는 신분보장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 수장인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사퇴해 정치에 뛰어들게 되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현직에서 검찰을 지휘한 모든 행위가 정치적 동기를 의심받고, 그를 따랐던 검사들의 향후 검찰권 행사도 중립적이라는 신뢰를 얻기 어려워진다. 헌법이 예정한 권력 질서가 훼손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스포츠 시즌 중에 심판장이 감독으로 스카우트되는 셈이다. 더욱이 심판장이 판정 시비로 다투던 팀의 라이벌 팀으로 가게 된다면 어떨까. 앞선 판정의 객관성과 그 배경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공정한 게임으로서 스포츠의 존속까지 어려워진다.

1995년 김도언 검찰총장이 퇴임 뒤 곧바로 총선에 출마하자 여야가 함께 ‘검찰총장 퇴임 뒤 2년간 정당활동 금지’ 입법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정치적 결사의 자유, 참정권 등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했지만, 검찰총장의 정치권 직행 자체가 바람직하다는 판단은 결코 아니었다. 검찰의 중립성 확보라는 공공의 가치보다 검찰총장 개인의 기본권에 더 무게를 둔 결과였는데, 이는 여러 헌법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입법 목적의 정당성에 비춰볼 때 정당활동의 원천봉쇄가 아니라 일정 기간 선거 출마만 제한하는 정도라면 위헌 소지가 없다는 것이다.(김웅규 ‘검찰총장의 헌법상 지위’) 서울대 총장을 지낸 성낙인 교수는 이 같은 법의 적용 대상을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으로 오히려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의원을 지낸 정종섭 교수는 수사권과 공소권의 공정한 행사는 검사 개인의 정의감에 맡길 게 아니라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윤 전 총장의 정치행위와 무관하게 중립성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검찰의 중립성이 실현되고 있는지 판단하는 주체는 검찰 자신일 수 없다. 헌법 제1조에 따라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몫이다. 사법권력이 본질상 국민의 신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검찰은 그동안 실패하고 있었다.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법원(35.3%), 경찰(49.2%)에 뒤지는 결과다. 2012년 이후 6차례 진행된 조사에서 검찰은 첫번째를 제외하고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통계청의 ‘2020 한국의 사회지표’를 봐도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경찰(46.4%), 법원(41.1%), 검찰(36.3%) 순이다.

윤 전 총장이 출마를 결행할 경우 그를 지지하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는 검찰의 중립성에 대한 시각이 더욱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 검찰’을 강조해왔는데, 이때 국민은 특정 진영이나 특정인을 지지하는 사람만 뜻하는 것일 수는 없다. 그의 출마는 ‘국민의 검찰’이라는 레토릭과 정면 배치되는 쪽으로 우리 사회와 검찰을 몰아넣게 된다.

새 검찰총장은 전임자의 정치 행보로 어지러워진 헌법의 아레나를 정돈해 검찰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검찰청법)라는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 첫걸음은 ‘윤석열 검찰’과의 철저한 절연이다. 29일 추천된 4명의 후보 가운데 누가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일까.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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