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팜파스 평원의 곡물지대에서 비행기가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을 살포하고 있다. ⓒ유러피안시빅포럼
신기섭ㅣ국제뉴스팀 선임기자
미국 등 주요국 주가가 계속 치솟으면서, 주식 투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주식시장 거품 붕괴 우려를 논한다. 하지만 훨씬 더 무섭게 오르는데도 많은 이들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문이 있다. 옥수수, 콩, 밀 등 국제 농산물 가격이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시카고 상품 거래소에서 오는 6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 가격이 2013년 3월 이후 처음으로 부셸(약 25.4㎏)당 7달러를 한때 넘은 데 이어 5일에는 7.2달러 근처까지 올랐다. 이는 지난해 연말보다 40% 이상 높은 가격이다. 콩과 밀의 선물 가격도 지난해 연말보다 각각 18%, 14% 이상 오르면서 8년 새 최고치에 도달했다.
곡물 가격은 특히 지난 4월 한달 동안 무섭게 올랐다. 상승세의 출발은 3월31일 나온 미국 농림부의 올해 첫 농작물 경작 계획 조사 보고서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국제 곡물 가격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오른 만큼, 미국 농민들이 올해 경작지를 대폭 늘릴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보고서는 미국 농민들이 옥수수와 콩 등의 경작 규모를 지난해보다 약간 늘리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주요 농산물 재고량도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발표 직후 농산물 선물 가격은 하루 가격 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월 내내 주요 농산물 생산국의 날씨까지 좋지 않았다. 미국 내 주요 농지인 중서부 지역에서는 한파가, 브라질에서는 가뭄 소식이 들려왔다. 유럽의 주요 농업 국가인 프랑스마저 이상저온과 가뭄으로 밀과 보리의 작황이 나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와중에도 중국은 돼지 등 가축 사료용 옥수수 등을 외국에서 계속 사들였다.
곡물 가격 상승세는 콩기름, 돼지고기 등 다른 농산물 가격까지 흔들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내 돼지고기와 콩기름 가격은 올해 들어 넉달 사이에 각각 52%, 43%나 올랐다. 곡물의 가격 상승세가 무색할 지경이다.
“농산물 시장이 불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 되자, 보기 드문 현상까지 나타났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 등 몇몇 나라는 너무 비싼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밀 수입 입찰 계획을 미뤘다. 중국, 한국, 베트남 등은 돼지 등의 사료를 옥수수에서 값이 더 싼 밀로 바꾸기 시작했다. 곡물을 쓸어 담던 중국조차 5일엔 미국 옥수수 14만t 구입 계획을 취소했다.
이제 주요 곡물 수입국가들은 다음주에 나올 미 농림부의 곡물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농산물 수요와 공급 전망치가 담길 예정이며, 이에 따라 국제 곡물 가격의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최근의 곡물 가격 급등이 각 가정의 식탁에까지 본격 영향을 끼치는 시기는 올 하반기부터다. 한국사료협회 등은 오는 11월 공급받을 농산물 등을 지난달 말부터 몇만t 단위로 잇따라 계약하고 있다.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제때 공급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점은 주요 식품회사들이 예년보다 많은 재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네슬레·윌마 등 거대 기업들의 재고는 지난 5년 평균치보다 일주일치 이상 많은 상태다. 이 때문에 곡물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고스란히 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큰 어려움에 빠진 개도국들로서는 남의 이야기다. 한국은 1970년대까지도 식량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나라다. 그 아픔을 기억하며, 국내 저소득층 지원 대책과 함께 제3세계의 식량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