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당신의 어휘력’을 평가하는 약방의 감초. “‘당랑거철’이 뭔 뜻이지? 마부작침’은?” 하면서 상대방 기죽이기용 무기로 자주 쓰인다. 한국어능력시험에서도 한두 문제는 거르지 않고 나오니 달달 외우지 않을 수 없다.
딸에게 ‘마이동풍’을 아냐고 물으니, 들어는 봤지만 정확한 뜻을 모른다고 한다. 어릴 적 마을학교에서 소학이나 명심보감을 배웠는데도 모르냐고 하니, 배우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다를뿐더러 아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며 사뭇 진지한 ‘변명’을 했다.
모두 한 뭉텅이의 ‘옛날 말’이나 ‘꼰대말’처럼 보이겠지만, 사자성어도 각자의 운명이 있다. ‘표리부동, 명실상부, 시시비비’처럼 한자를 알면 쉽게 알 수 있는 단어는 생명력을 갖지만, ‘교각살우’처럼 겉의미와 속의미를 연결해야 하는 말은 덜 쓰인다. 한술 더 떠서 고사성어는 ‘초나라 항우가’라거나 ‘장자의 제물론을 보면’ 같은 식으로 관련한 옛이야기도 알아야 한다.
사자성어가 유창성이나 어휘력을 판별하는 척도인지 의문이다. 알아두면 좋다는 식으로 퉁칠 일은 아니다. 자신의 문장에 동원되지 않는 말은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식이니 버리자거나 쉬운 말로 바꿔 쓰자고만 할 수도 없다. 문체적 기교든, 아는 체하려는 욕망이든 그것을 써야 하는 순간이 있다. 게다가 축약어 만들기에 면면히 이어지는 방식의 하나다. ‘내로남불, 찍먹부먹, 내돈내산, 낄끼빠빠, 할많하않’. 실질이 요동치지만 형식은 남는다. 뒷방 늙은이 신세이지만 시민권을 깡그리 잃지도 않았다. 시험에 자주 나오지만, 외롭고 어정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