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의 과학풍경] 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인공지능이 요즘 기술 패권이나 냉전 같은 말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최근에는 <네이처>에 ‘인공지능 냉전을 멈추라’는 제목으로 국제 민간기구인 로봇군비통제위원회 부의장이 쓴 글이 실렸다. 미국의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NSCAI)가 3월에 낸 최종 보고서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보고서는 인공지능이 미국 국방과 안보의 핵심 기술임을 강조하면서 기술 패권을 위해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권고를 정부와 의회에 제시했다.
미국 주간 <더 네이션>은 이런 전략이 냉전기의 패권 전략을 닮았다고 분석했다. 옛 소련이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충격을 받은 미국이 사회 전반에 패권 경쟁의 냉전 분위기를 돋우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핵폭탄과 미사일은 인공지능으로, 옛 소련은 중국으로 바뀌었다.
750쪽 넘는 보고서를 요약한 한국 산업연구원 연구진의 최근 자료를 보면, 예컨대 국방과 안보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자며 냉전기의 국방교육법을 다시 불러내고 인재 유치를 위해 국가안보이민법을 제정하고 또 일종의 사관학교인 ‘디지털 서비스 아카데미’를 세우는 방안이 제시됐다. 중국 같은 특별관심국의 기술 투자와 기술탈취를 막고, 민주주의 동맹국들이 참여하는 ‘국제 디지털 민주주의 이니셔티브’ 동맹체를 꾸려 중국에 맞서야 한다는 권고도 담겼다. 보고서는 “인공지능 및 연관 첨단산업 주도권 경쟁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가치의 경쟁’으로 인식”하며 “과거 소련과의 냉전에 대응하는 수준으로 국가적 차원의 총력 대응을 권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옛 냉전 분위기를 다시 불러낼 것이라고 <더 네이션>은 우려한다. 대학과 연구소에 군사 관련 인공지능 연구가 늘고, 민군 겸용 인공지능을 다루는 기업에 국가 개입은 많아지고, 중국과 교류는 중단되거나 축소되고 기술 유출을 막는 감시와 모니터링은 늘 것이다.
인공지능이 전투를 수행하는 자율무기의 개발도 경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미래 전쟁은 알고리즘과 알고리즘의 싸움”이라고 강조한 보고서는 인공지능 자율무기에 대한 금지 요구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고도 전했다. 적이 눈앞에 있고 전쟁에 이겨 패권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냉전의 사고방식이 보고서의 바탕에 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인공지능은 양면을 지닌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초래할 수 있는 인권과 윤리 문제를 줄이고자 그동안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그렇게 모양을 갖춰온 인공지능 개발과 사용 원칙들이 인공지능 패권 경쟁에 위축돼선 안 된다. 기술 패권 경쟁이 지구 환경 위기에 쏟을 자원과 관심을 빼앗아갈 것이라는 우려도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