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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신과 책읽기

등록 2021-05-23 18:03수정 2021-05-24 02:39

[말글살이]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나는 천성이 맑고 선하며 예의가 바르다(=맹탕이고 비겁하며 남들 눈치를 본다). 여간해서는 어른들 말씀에 토를 달지 않는다. 맞는 말에도 허허, 틀린 말에도 예예.

마을 일로 마을회관에 갔더니 동네 원로 몇 분이 와 계셨다. 모임 시작 전에 한 분이 백신 얘기를 꺼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백신 중에서 제일 ‘싸구려’인데, 그걸 왜 우리보고 맞으라고 하냐는 것이다. 20만원짜리도 있는데 이건 꼴랑 4천원. 조용하던 마을회관이 노인 차별 규탄의 장으로 바뀌었다. ‘늙은이들은 싼 거나 맞으라는 거냐?’ 카톡에서 얻은 정보다. 백신 가격과 백신 효과는 관계가 없다거나 이윤을 남기지 않고 공급하려는 정책 때문이라거나 유럽 각국의 총리도 다 이 백신을 맞았다는 얘기는… 안 꺼냈다.

한국의 디지털 정보 문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바닥권이라는 피사(PISA)의 발표가 있었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내용은 학생이 읽어야 하는 글의 길이였다. 핀란드, 덴마크, 캐나다 등 상위 국가는 100쪽이 넘는 글이 전체 글의 70~75%를 차지한다. 한국은 10%에도 못 미쳤다. 76개국 중 67위이다. 긴 글을 읽는 행위와 문해력은 상관관계가 높다. 또한 디지털보다 종이책으로 읽고, (시험이나 강제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읽어야 문해력이 길러진단다.

방법은 많지 않다. 문해력을 기르려는 공동 노력뿐이다. 나도 마을 어른들과 책읽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맹탕처럼 보이는 처방이지만, 가짜 정보와 사특한 논리를 가려내어 남녀노소, 빈자와 부자가 어울려 사는 마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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