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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지금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면…

등록 2021-05-25 18:27수정 2021-10-14 16:05

이종규

논설위원

지구의 날인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정부에 촉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지구의 날인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정부에 촉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4월26일치 표지에 ‘불타는 세계’를 이미지화한 사진을 실었다. 성냥개비로 만든 세계지도에 누군가 막 불을 붙이는 장면이다. 표지 상단에는 ‘기후가 모든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전세계가 지금 당장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설치예술 작품이라고 한다. 올 3월 국내에 출간된 나오미 클라인의 신간 제목은 <미래가 불타고 있다>(원제 ‘On Fire’)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입을 빌려, 지구에 난 불(기후위기)을 서둘러 끄자고 호소한다. “저는 여러분이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듯이 행동하길 원합니다. 집이 불타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툰베리가 다보스포럼에서 기업인과 정치인들에게 한 말이다.

기후위기를 대하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태도가 한없이 여유로워 보여서일까? 기후운동가들은 절박하다. 그들의 구호를 봐도 알 수 있다. 공룡 멸종에 이은 ‘6번째 대멸종’을 거론하며 “멸종되기 싫다”고 절규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후운동 단체의 이름은 ‘멸종 저항’이다. 이 단체의 시위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살고 싶다’이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가 깃들여 사는 지구가 불타고 있다는데. 기후재앙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될 젊은 세대라면 더더욱.

지구가 더워지는 건 알겠는데, 너무 호들갑스럽지 않으냐는 반응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실이다. 북극 해빙이 녹아 없어지고, 해양 산성화로 산호초가 절멸 위기에 처했다. 끊이지 않는 대형 산불, 사상 최장의 장마와 기록적인 폭염은 또 어떤가. 전세계 청소년 수백만명을 동시다발 기후 파업으로 이끈 것은, ‘이러다간 우리의 미래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 이상기후 현상을 두고 ‘재앙’이라고까지 해야 하느냐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일정한 단계를 넘어서면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끼쳐 증폭되는 특징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되먹임’ 작용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의 눈과 빙하가 녹으면 태양 복사열 반사량이 줄어 다시 지구 온도가 상승하는 것이 한 예다.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면 영구동토층이 녹아 그 안에 갇혀 있던 다량의 온실가스가 대기로 방출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기후변화는 전적으로 인간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땅속에 잠들어 있던 탄소(화석연료)를 깨워 대기 중으로 마구 뿜어낸 것이 화근이었다.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뒤로는 고삐가 풀린 것처럼 성장만을 추구했다. 화석연료라는 손쉬운 에너지원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근대 이후 인류 문명을 ‘탄소 문명’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후과는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바 그대로다.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0% 이상 높아졌다. 대기에 쌓인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도를 이미 1도 이상 높였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을 넘기면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보는데,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 눈금은 414ppm을 가리키고 있다.

기후위기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한 성장을 추구해온 대가로 인류에게 날아든 ‘비용 청구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기후위기 해결의 열쇠도 전적으로 인류가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는 2018년 내놓은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1도가 올랐으니, 이제 남은 것은 0.5도뿐이다. 파국을 막으려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이상 줄이고, 2050년까지는 ‘탄소 중립’(넷 제로)을 달성해야 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경제활동과 일상이 적잖이 멈췄음에도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고작 전년보다 7% 줄어드는 데 그쳤다. 아이피시시가 권고한 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급격하게 줄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방법은 나오미 클라인이 <미래가 불타고 있다>에서 제안한 것처럼 ‘비상하게’ 행동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비상사태를 비상사태처럼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에너지를 (기후위기를 막는) 행동에 쏟아부을 수 있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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