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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검찰의 정의와 공정은 무엇인가 / 박용현

등록 2021-06-01 15:47수정 2021-06-01 18:49

박용현 논설위원
박용현 논설위원

최근 물러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은, 죄질로 따지면야 비교가 안 되지만, 부실·봐주기 수사 의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의혹을 다루는 방식은 사뭇 대비된다.

지난해 말 이용구 전 차관이 변호사 시절 술에 취해 택시를 탔다가 목적지인 아파트에 도착해 자신을 깨우는 기사의 멱살을 잡은 사건이 무혐의 처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봐주기 수사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일자 경찰은 한달여 만에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단장으로 13명의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지금까지 담당 수사관 등 4명을 입건하고 보고라인을 포함한 관계자들의 통화내역 7천여건을 분석하는 등 사건 처리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검찰도 별도로 무혐의 처분 경위와 외압 여부 등을 수사 중이다.

2013년과 2014년 성접대 동영상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을 압수수색 한번 없이 잇따라 무혐의 처분하자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지만 검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4년여가 지나서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꾸려져 조사에 나섰으나 조사 주체는 수사 권한도 없는 진상조사단 4명이었다. 과거사위의 권고로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과거의 무혐의 판단을 뒤집고 김 전 차관을 기소했지만, 부실·봐주기 수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강제수사를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외압 여부에 대해서도 관련 진술이 없거나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온국민을 경악하게 한 희대의 사건을 덮은 책임은 결국 아무에게도 귀속되지 않았다.

김학의 전 차관 역시 사건의 핵심이었던 성접대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었다. 이용구 전 차관을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한 경찰의 책임, 그리고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별장 성접대 사건의 형사처벌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검찰의 책임,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두 사건의 극명한 비대칭을 보면서 검찰의 정의와 공정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이건 또 어떤가. 지난해 8월 대검찰청에서 근무 중인 검사가 술에 취해 달리는 택시 문을 열려고 하다 이를 말리며 갓길에 차를 세운 택시기사를 폭행했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으나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굳이 처벌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와 관련해서도, 그가 밤늦게 해외 도주를 시도한 것은 출국금지가 돼 있지 않은 사실을 누군가 알려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에 대해선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그의 도주를 막기 위해 긴급히 출국금지를 내리는 과정에서 절차적 위반이 있었다는 의혹을 두고는 몇달째 떠들썩하게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불균형과 불공정을 가능하게 하는 게 검찰의 재량권이다. 경찰 수사는 검찰에서 한번 걸러질 수 있지만 검찰의 직접수사는 그런 장치마저 없다. 검찰이 거의 독점한 기소권 행사에서는 재량이 더 커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선택적 수사·기소’라는 마법이 펼쳐진다.

그 대표적 사례가 고 노회찬 의원의 ‘떡값 검사’ 폭로 사건이다. 삼성이 검찰 고위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정황이 담긴 ‘삼성 엑스(X) 파일’이 2005년 언론에 보도되고 노 의원이 여기에 등장하는 검사들의 실명을 폭로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 결과 의혹의 당사자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고 오히려 폭로한 쪽만 처벌받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삼성 엑스 파일이 옛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의 불법 도청 내용이므로 이를 공개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이유였다. 노 의원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불법 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의 달은 바로 삼성 엑스 파일”이라며 공익을 위한 폭로였음을 항변했지만 결국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고 노회찬 의원. 노회찬재단 제공
고 노회찬 의원. 노회찬재단 제공

사건의 본질과 곁가지를 뒤섞고 끝내 본말을 전도시키는 검찰의 마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김학의 전 차관의 성접대 혐의와 이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은 검찰의 과오는 묻혀지고, 그를 단죄하려 노력한 검사들의 절차 위반만 부각시키고 있다. 김학의 전 차관이 무고한 희생자인 듯한 착시마저 일으킬 지경이다.

검찰은 피의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절차적 정의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절차적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수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이 절차를 위반해 유출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1심 재판부가 “강사휴게실 피시(PC)에서 추출한 전자정보는 형사소송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취득한 증거”라고 지적했고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 재판에서는 검찰이 이 컴퓨터 포렌식 결과를 일부만 선별 제출해 ‘객관 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에 대해 검찰은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법원 판결문에까지 형사소송법 위반으로 지적된 한명숙 전 총리 수사팀의 수사 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절차적 정의마저도 사람에 따라 잣대가 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검찰의 재량권은 ‘사건’보다 ‘사람’을 기준으로 행사될 때 가장 위험하다는 로버트 잭슨 전 미국 연방검찰총장의 말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수사에 집중할지, 어떤 사건을 기소할지 재량권을 부여하는 한 불공정 논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 수도 있다. 검찰이 다루는 셀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을 공정성 시비 없이 일관되게 처리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2000명 넘는 검사들의 태도와 시각도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의 경중을 뒤바꾸거나 같은 사안을 달리 취급하거나 심지어 노골적인 봐주기로 검찰의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 혼란을 주는 지경이 돼서는 곤란하다. 검찰의 정의와 공정에 물음표를 다는 시민들이 많아지는 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커다란 위험이다.

영국 검찰청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과 고려 요소들을 내부규정(The Code for Crown Prosecutors)에 세세히 열거하고 이를 외부에 그대로 공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 규정을 보면, 기소 결정은 유죄 판결을 확신할 만큼 증거가 충분한지를 검토하는 1단계와 기소가 공익적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는 2단계 테스트를 거쳐 이뤄진다. 후자는 범죄의 심각성, 피의자의 책임, 피해자의 상황, 사회공동체에 끼치는 영향, 과잉 대응 여부 등을 따지는 것으로, 검찰권 행사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다. 이를 통해 실제로 기소권 남용이 완벽하게 차단되고 있느냐는 물음과는 별개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것 자체로 눈길을 끈다.

검찰의 수사·기소를 두고 배경과 의도를 의심하고 봐주기니 과잉이니 하는 공방이 벌어지는 건 검찰제도를 둔 어느 나라에나 있어 왔다. 동시에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권한 분산과 견제장치 마련 등 제도적 개혁도 부단히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진영과 계층을 넘어 대다수 국민이 검찰의 정의와 공정을 믿게 되는 것, 그것이 검찰개혁의 목적지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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