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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자신을 감추는 법이 몸에 익었다는 아내

등록 2021-06-09 13:47수정 2021-06-10 02:37

하루 이틀 그렇게 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열흘이 가도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어요.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새로 온 아이'는 점점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어머니, 이게 도시에서의 육아이고 교육입니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선무영ㅣ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중학교 가기 전 2월쯤이었나요. 학원에 가기 싫은데 어머니는 가야 한다며 성화셨습니다. 그래서 방문을 잠그고 나가지 않았죠. “정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열심히 가자” 하는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 학원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평촌에 있는 유명 학원이었습니다. 입학시험도 치르고 반 배정을 받은 뒤에나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죠. 저는 봄방학에야 시작했지만, 학원 아이들은 초등학교 겨울방학 때부터 함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새 아이가 오면 호구조사가 시작되죠. 어디 사느냐. 군포면 못사는 데라던데. 너네 학교 똥통 아니야?

학원 공부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어요. 구멍 뚫어놓은 팝송가사집을 전부 채워야만 갈 수 있었죠. 아직도 그 노래가 생생합니다.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애즈 롱 애즈 유 러브 미’(As long as you love me). 커닝은 금지되었지만, 다른 친구들끼리는 집단지성을 발휘했습니다. 새로 온 저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보여달라고 말도 못 꺼냈어요.

하루 이틀 그렇게 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열흘이 가도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어요.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새로 온 아이'는 점점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하루 종일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모르는 게 있어도 주변 눈치를 보느라 선생님한테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상황인지 엄마한테 말하기 어려웠죠. 그래서 방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어머니, 이게 도시에서의 육아이고 교육입니다.

제가 경험한 ‘교육'은 로스쿨까지 이어집니다. 성적에 대한 압박과 평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하는 스트레스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그 정도가 사뭇 다르죠. 그건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스트레스입니다. 로스쿨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성인이고, 어느 정도 가치관을 정립한 독립체라 할 수 있으니 의젓하게 대처하리라 생각됩니다만,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라면 어떨까요.

시골에서의 삶은 불편하고,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도시에 모여 살죠. 그렇기에 아이를 기른다면 꼭 시골이면 좋겠어요. 평균과 같은 통계수치에 무디고, 보통 사람과 다르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제 삶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마음 한켠에 능력주의가 뿌리내렸어요. 그래서 변호사가 되어야만 시골에 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스스로 귀하게 생각되는 것이라기보다 남들 보기에 성공한 삶이라는 표지를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도, 귀농도, 아이도 늦어졌네요. 제 아이는 저보다 더 자유롭고, 더 용감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강형욱 훈련사가 도시는 개가 살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했다죠. 짖는 게 천성인 개들에게 아파트 생활은 어렵습니다. 신나서 방방 뛰는 것도 혼날 일이죠. 요새 아내가 기르던 치와와 ‘뀨'와 살아보니 그 말이 정말 살에 와닿습니다. 아이는 어떻습니까. 사람은 태어나서 12개월까지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합니다. 울어재끼고, 소리 지르는 것이 당연한 거죠. 엄마와 아빠를 말로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을 때에 망치발로 콩콩 뛰면 안 된다는 걸 가르치기란 조기교육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바짝 붙어 사는 도시에서 자라는 동안 아이는 공동생활예절을 몸에 익히게 되겠죠. 그 외에도 부모가 알아채기 전에 아이가 익히게 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아내는 자신을 감추는 법이 몸에 익었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얼 입고, 보통 어디서 살고, 보통 무슨 일을 한다는 것에 그렇게 마음이 쓰인다 해요. 무엇이 ‘보통'이고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으니, 본인이 좋아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다 합니다. 자꾸 그런 생각이 행동을 주저하게 만든다나요.

아이가 생긴다면 저는 보통이나 평균에 마음 쓰지 않고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집에서만큼은 마음껏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더라도 괜찮은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또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초심이 주변에서 비롯하는 압박감으로 흔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먼저 부모가 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이를 낳기 전에는 늘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아이를 기르다 보면 전과는 달라진다 해요. 저라고 안 그럴까요. 그래서 얼른 시골에서 살고 싶습니다. 맹자의 어머님은 맹자가 보고 배울 것을 생각하여 세번이나 거처를 옮기셨다죠. 쟁취에 익숙해져야 하는 도시에서의 교육보다 한발 물러나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골은 어떨까요. 지금은 방구석에서 전세계를 보고 배울 수 있는 때입니다. 배우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으나,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가 본이 되어야 하겠지요. 주변에 변변한 학원 하나 없더라도, 제가 본이 되려 합니다. 어머니, 이 정도면 담백한 생각에서 출발한 진중한 행동이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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