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모폴리턴] 조기원ㅣ국제뉴스팀장
21세기가 시작된 뒤인 2001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유엔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및 이와 관련된 불관용 철폐를 위한 세계회의’(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노예제와 노예무역은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라고 유엔 차원에서 명시한 역사적 ‘더반 선언과 행동강령’(더반 선언)이 채택됐다. 또한 “식민주의는 비난받아야 하며 재발은 방지되어야 한다”고 식민주의를 비판했다.
더반 선언의 탄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노예제 및 식민지배 시대 범죄에 대한 배상·보상을 요구하는 일부 피해국과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해국 사이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인종차별주의로 규탄하자는 중동 국가와 반대하는 서방의 견해 차이가 커서 회의는 파행을 거듭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반이스라엘적 내용이 논의된다”며 대표단을 중간에 철수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선언문은 수정 작업을 거쳐서야 빛을 보았다. 더반 회의 직전에 열렸던 유엔 인권 소위원회에서 식민지배 시대에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에 속하는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과 배상 인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으나, 더반 선언에는 배상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
더반 선언 이후 노예제 및 식민지 시대 범죄에 대한 지배 국가들의 사과와 반성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지난해 벨기에 필리프 국왕은 아프리카 중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펠릭스 치세케디 대통령에게 “과거의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사과 표시는 없었다. 1885년 벨기에 국왕이던 레오폴드 2세가 아프리카 중부 지역 추장들에게 땅 200여만㎢를 빼앗아 콩고 자유국가로 이름 짓고, 국왕의 사유지로 현재의 민주콩고와 부룬디, 르완다를 식민지배했다. 벨기에 군인들이 고무 생산량 할당량을 못 채웠다며 원주민의 팔을 자른 잔혹한 행위는 식민주의가 한창 득세했던 당시에도 세계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문제가 되자 벨기에 정부는 이른바 콩고 자유국가를 국왕에게 빼앗아 1960년까지 지배했다.
더반 선언 20주년인 올해 5월28일 독일은 식민지배(1884~1915년)했던 나미비아에서 1904~1908년 벌였던 원주민 학살을 “제노사이드”(대량 학살)라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또한 “희생자들에게 가해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인식의 표시”로 개발지원금 11억유로를 나미비아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식민지배 시대 학살 뒤 100년 이상 지난 시점에야 유감 표시 또는 사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더반 회의 때처럼 최근에도 노예제와 식민지배 시대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과 이에 따른 배상은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미비아 피해 원주민 부족이 독일의 개발지원금 제공이 “모욕”이라며 반발했다. 식민지배 시대 범죄에 대한 진정한 해결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다시금 느낀다.
더반 선언 이후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는 2009년 스위스 제네바 그리고 2011년 뉴욕에서 두차례 더 열렸다. 당시의 ‘약속’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준비된 자리였지만, 회의는 파행을 거듭해왔다. 미국은 더반 선언 자체가 반이스라엘적이고 반서방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2009년 회의를 보이콧했다. 2011년에도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불참했고, 20주년을 맞는 올해 9월 뉴욕에서 열리는 회의에도 미국과 캐나다 등은 이미 또다시 보이콧을 택했다. 더반 회의는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을 넘어 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고 이후 진보의 발걸음도 있었으나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