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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포퓰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등록 2021-06-16 14:29수정 2021-06-17 02:39

완고한 보수정당이 젊은 당대표를 받아준 데엔, ’정치적 올바름’(폴리티컬 코렉트니스)에 대한 이준석의 솔직한 공격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탓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기엔 좋은 소재지만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젠더 문제나 공정·정의 이슈에서, 이준석은 보수 진영이 갖고 있던 이율배반적인 정서를 털어내줬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얀센 백신을 접종하기 앞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얀센 백신을 접종하기 앞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이준석씨가 새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11일 오전, 동대구역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79살 이효기씨는 환호하며 “썩은 정치 다 갈아엎어야지. 이번엔 꼭 정권교체해야 해”라고 말했다고 <한겨레> 르포 기사는 전했다. 박정희 공화당 시절부터 줄곧 그쪽만 찍었다는 이씨의 반응에서 ’정권교체’의 강한 열망을 읽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36살 이준석을 매우 보수적인 대구 노인까지 흥분하게 한 배경의 한자락엔, 야든 여든 기성 정치를 싹 바꾸고 싶다는 욕구가 깔려 있다. ‘이준석 돌풍’은 진보-보수간 격한 대립의 산물이지만, 기득권화한 제도 정치권과 그에 불만을 품은 대중의 대립이란 성격도 띠고 있다. 이 변화를 여야 모두 훨씬 위험하고 폭발력 있는 사안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이준석 대표 선출이 2030세대 특히 20대 남성의 불만에 편승한 세대 갈등 또는 세대 교체의 요구라는 분석은 절반의 진실이다. 영남에서 그에 열광한 수많은 보수 지지자들을 한번 보자. 이준석의 당선은 젊은 세대의 반란이지만, 나이든 보수층이 그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 좀더 적절하다. 완고한 보수정당이 젊은 당대표를 받아준 데엔, ’정치적 올바름’(폴리티컬 코렉트니스,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이준석의 솔직한 공격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탓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기엔 좋은 소재지만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젠더 문제나 공정·정의 이슈에서, 이준석은 보수 진영이 갖고 있던 이율배반적인 정서를 털어내줬다. 이제 진보 엘리트를 ‘내로남불’에 빠졌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공격할 수 있게 됐다.

그 점에서 이준석 정치가 포퓰리즘이라는 분석은 틀리지 않다. 다만, 그런 포퓰리즘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국회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동네 카페에서 다른 당 대표를 만나는 모습을 두고 “쇼냐 아니냐” 따지는 건 부질 없는 일이다. 유력 정치인들 만남이 꼭 고급 한정식집일 이유는 없고, 당대표나 국회의원이 항상 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 우리 정치인의 표준적인 모습은 그렇게 새겨져 있다.

이준석은 기존의 정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당대표 경선 때 선거 캠프나 선거 사무실을 두지 않고, 당원들에게 단체 홍보문자 한번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을 다닐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선거비용으로 쓴 돈은 3천만원이 전부였다. 그 대신 테블릿피시를 옆에 끼고 빅데이터로 이슈를 파악해서 자신의 생각을 직접 페이스북에 올려 온라인 여론을 들끓게 했다. 2015년 12월 스페인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좌파 신생정당 포데모스는 의원에게 주는 퇴직연금을 받지 않고 의원 월급도 최저임금의 3배만 받기로 하는 등 의회에서 제공하는 많은 특권을 포기했다. 포데모스는 “우리는 일반 시민과 똑같은 위치에서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중요한 건 좌-우 이념이 아니라 위-아래 기득권이라고 포데모스는 생각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젊은 정치인들이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86 세대’가 당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기성 정치인의 특권과 권위를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의 옆에서 활동한다는 분명한 각인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 검사들과 논쟁을 하자, 거의 모든 정치인과 언론의 첫 반응은 “대통령이 권위 떨어지게 일선 검사들과 말싸움이나 하고…”였다. 그 권위와 특권을 지금은 훨씬 더 대담하게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걸 이준석은 보여준다. 민주당의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어찌 보면 이준석 현상이 포퓰리즘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스페인 포데모스 지도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우리를 포퓰리즘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더 낮게 국민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듣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제도 개선과 개혁을 해나가는 일이다. 시민 10만명이 청원한 차별금지법은 그래서 더 의미 있다. 법안 내용도 중요하지만, ‘10만 시민’의 목소리를 입법에 반영하는 것 자체가 뜻깊은 일이다. 국민이 직접 법안을 내는 국민발안제나 국민소환제, 국민투표 확대를 위한 입법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세대 교체’ 논쟁도 필요하지만, 이런 행동과 인식의 전환이 더 시급한 게 아닐까.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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