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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한-중관계 ‘뉴노멀’ / 박민희

등록 2021-06-17 15:51수정 2021-06-17 19:22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콘월/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콘월/청와대사진기자단

박민희ㅣ논설위원

지난 주말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화목한 잔치처럼 보인, 격렬한 외교전이었다. 미국은 전세계적 영향력과 지도력을 재건하고, 반중국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분주했다. 유럽 국가들, 일본, 캐나다도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대응했다.

G7 정상들이 치열한 논의 끝에 내놓은 공동성명은 ‘중국 견제’로 가득했다. 대만을 둘러싼 긴장, 신장과 홍콩의 인권과 민주 이슈를 비롯해 코로나19 기원 재조사,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와 일대일로에 대항할 구상 등이 총망라되었다. 중국의 급부상에서 비롯된 문제들에 어느 정도로 대응해야 하느냐를 놓고 각국의 입장 차이는 존재하지만, 큰 틀에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대응하겠다는 신호는 분명했다.

미국은 미-중 경쟁을 ‘민주와 독재의 대결’로 규정하려 하지만, 본질은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도전하는 중국의 총력전이다. 그 대결의 와중에 중국에 대한 반발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자업자득이다. 2049년까지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중국은 그에 합당한 대안적 국제질서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현실에서 보여준 것은 국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빅브라더 감시사회’였고, 국제적으로는 돈과 힘으로 다른 국가들을 좌지우지하려는 ‘늑대전사 외교’였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G7 정상들과 나란히 선 사진과 함께 “이 자리 이 모습이 대한민국의 위상”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중국을 비판한 G7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은 G7 회원국이 아니라 ‘초청국’ 정상이어서 성명서 작성에 참여하지 않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사상 처음으로 중국이 민감해 하는 “대만해협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명시한 뒤에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나서 “원론적이고 원칙적 내용일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흐름에 동참한 뒤, 곧바로 ‘우린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중국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중 경제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한 행보이겠지만,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는 이런 시기에 원칙을 분명히 하고 결정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주요 10개국(G10)의 반열에 올랐다는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한-중 관계의 ‘뉴노멀’을 직시해야 할 때다. 한-중 관계는 2016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와 중국의 보복 조처를 계기로 급속도로 악화되었지만,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것은 더 큰 틀의 지각 변동이다. 한-중 경제 관계는 긴밀하지만 첨단기술 등의 영역에서 양국간 협력보다는 경쟁의 영역이 넓어졌고,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패권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공세적 애국주의를 고조시키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됐다. 한국 사회 일각의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면 한-중 관계가 사드 이전으로 회복될 것’이란 기대는 환상이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중국 모델’ ‘중국 방안’을 새로운 국제질서로 제시한다. 그런데, 지금 중국이 보여주는 ‘중국식 질서’에 동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두고 한국 사회는 깊이 분열돼 있다. 정부가 이 질문을 회피하는 듯한 행보를 하는 동안, ‘반중 여론’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중국 문제를 둘러싼 국내 갈등은 종종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곤 한다. 이제 중국의 변화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달라진 한-중 관계의 뉴노멀에 적합한 대중 외교의 새로운 방향을 한국 사회가 차분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미-중 ‘신냉전’에서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간 국가들이 ‘제3 지대’를 형성해 긴장을 완화하자는 구상이 진전되려면, 한국도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실제로 독일의 외교·국방 당국자들은 최근 한국 당국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비슷하다며 한국의 대중 정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독일에도 중국은 핵심 수출시장이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해 왔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신장·홍콩 상황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동시에 경제와 기후변화 해결 등에서 중국과 협력은 계속해 나간다는 원칙을 국제적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국은 중국 문제에 침묵할 것이 아니라, ‘비판과 협력의 원칙’을 명백히 하면서 이를 공유할 수 있는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넓혀가려는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G7에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를 더해 G10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진전되지 못했지만, 한국이 앞으로 보여줄 역할에 따라 가능성은 열려 있다. 첨단기술과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연합(T-12), 민주주의 10개국(D-10) 등 새롭게 논의되는 국제 협력의 틀에서도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높다.

중국을 향해서는 협력을 계속하되, 지금의 ‘중국식 질서’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더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길 바란다는 신호를 계속 발신해야 한다. 한-중이 더 나은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한-중 관계의 뉴노멀을 직시할 때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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