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각) 무장한 탈레반 지휘관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각)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이 2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제 아프간에선 탈레반이 20년 만에 재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사회는 미국이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치르고도 왜 아프간에서 패배했는지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1975년 베트남전이 남베트남의 패배로 끝날 때 미국인들이 헬기를 타고 사이공(현재 호찌민)을 긴급 탈출하던 장면에 빗대 조 바이든 대통령을 거칠게 비판했다. 하지만 외신 보도를 보면, 철군 결정이 문제라기보다는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 이후 아프간 상황에 대해 오판했고 대비책 마련도 허술했다는 비판이 많다. 여론조사에서 아프간 철군 찬성 응답이 70% 이상 나올 만큼 미군이 아프간에 발이 묶여버린 상황 자체에 미국인들은 비판적이다.
아프간 사태는 비극적인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시작한 대테러 전쟁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취약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9·11 테러 주범인 알카에다를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전쟁 시작 두달 만에 탈레반을 카불에서 축출했지만, 미국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테러 거점을 완전히 제거하려면 아프가니스탄에 ‘정상적인 국가’를 세우는 게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아프간 국민들 처지에선 서방 기준의 민주주의 국가를 일방적으로 이식하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종교와 부족이 복잡하게 얽힌 아프간 역사를 고려하면 이런 식의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은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에 미국 정부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가 20년 만의 탈레반 재집권이고, 지금 카불에서 벌어지는 대혼란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대테러 전쟁의 목표가 됐던 이라크 역시 오랫동안 비슷한 혼란을 겪는 건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과도한 종교적 신념으로 특히 여성과 소수자 인권을 억압하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잘 이끌어가리라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부에서 특정 이념과 가치를 이식하려는 시도 또한 성공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제사회에선 보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 국민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프간 사태는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