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 AP 연합뉴스
정부가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 대우하는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우선 미국 정부에 한국산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시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분쟁해결 절차에 제소하는 방안은 최후 수단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미 외교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예상됐던 수준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맹렬하게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정도의 대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은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구매자에게만 최대 7500달러(약 1천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된 인플레 감축법을 지난 16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실제 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국내산과 수입산의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와 한-미 에프티에이를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추진한 것은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자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명백히 국제 통상규범을 위반하고 있는 만큼 엄중하게 항의하고 동등한 대우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국제법상 보장돼 있는 분쟁해결 절차도 가동해야 한다. 엄연히 규정돼 있는 절차를 미루면 우리를 만만하게 여길 수도 있다. 세계무역기구 분쟁 절차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은 만큼 한-미 에프티에이 분쟁 절차를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유럽연합(EU)·일본과 공조 체계를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 단독으로는 힘이 부치니 다른 나라와 연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의 설명이 조금 차이가 있다. 산업부는 이들 국가와의 공조에 적극적인 반면, 정작 이들 정부와 협의에 나서야 할 외교부는 신중한 태도인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차원에서 통일할 필요가 있다. 대미 통상라인이 제대로 대응했는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애초 미국 의회는 ‘노조가 있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기로 했는데, 캐나다와 멕시코가 강력 항의해 이를 ‘북미산’으로 바꾼 것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