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협력해 국제사회의 복합적 위기를 극복할 것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오늘날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간접적으로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이 반발한 ‘담대한 구상’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11분간의 연설에서 가장 여러번 언급된 것은 5월 취임식과 8·15 광복절 축사과 마찬가지로 ‘자유’라는 열쇳말이었다. 윤 대통령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질병과 기아로부터의 자유, 문맹으로부터의 자유, 에너지와 문화의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축적해온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를 강력히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그동안 언급해왔던 가치연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는 백신·치료제 공동 이니셔티브에 3억달러, 세계은행 금융중개기금(FIF)에 3천만달러를 공약하고 글로벌 감염병 대응을 위한 글로벌 펀드에 대한 기여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다.
‘자유와 연대’를 강조한 연설로 시작한 이번 유엔 외교에 대한 평가는 남은 기간 동안 개최를 추진 중인 한-미, 한-일 정상회담의 내용에 달려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한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 한-일 강제동원 문제 등 난제가 수두룩한데 진전된 성과가 없다면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가치동맹’이란 말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15일 대통령실이 “한-일 정상회담을 열기로 일본과 일찌감치 흔쾌히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회담이 막판까지 오리무중인 상황은 걱정스럽다. 한국 대통령실이 섣불리 먼저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했다가 불리한 상황에 몰렸다는 우려가 크다. 19일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은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으니 한국 쪽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최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강제동원 문제, 한-일 안보협력과 경제·무역 현안 등을 ‘일괄 타결’하고 싶다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정치적 이유로 한-일 관계 개선의 성과를 서둘러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양국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서 전략과 디테일 모두를 다듬고 조율해가는 외교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