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국토교통부 주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시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22일 공청회에서 내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공동주택의 경우 올해의 71.5%보다 낮은 69%로 하자는 것인데, 정부가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공정한 과세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인데, 애써 쌓아온 것을 도로 부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시가격은 보유세 과세와 양도세를 중과하는 다주택 보유 여부 판정 등의 기준이 된다. 시세보다 매우 낮은데다 주택의 종류에 따라 시세 반영률(현실화율)에 차이가 있어서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1월 당시 50~70%인 현실화율을 단계적으로 올려, 5~15년 뒤 90%까지 올리기로 한 것이 ‘현실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현실화율은 2020년 69%에서 2021년 70.2%, 올해 71.5%가 됐고 내년에는 72.5%로 올릴 계획이었다.
현실화율은 고가 주택일수록 빠르게 올랐다. 이에 반발이 일자 정부가 올해 보유세 산정 때 1주택자에게는 2021년 공시가격을 일단 적용하고 현실화 계획은 재검토를 해왔다. 지난 4일 열린 1차 공청회에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내년에는 올해 공시가격을 동결해서 쓰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1년간 검토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청회를 새로 열어서까지 ‘하향 조정’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현실화율이 더 크게 오른 고가 주택 보유자들을 크게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세금을 좌우하는 것은 공시가격뿐이 아니다. 공정시장가액비율, 공제액, 세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따라서 공시가격을 현실화해가면서, 다른 것들을 고쳐 얼마든지 세금액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 길을 놔두고 정부가 공시가격에 손대는 것은 올해 1주택자 종부세 과세 기준을 14억원으로 올리는 데 반대하는 야당과 합의 없이도 세금을 낮춰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외국에 견줘 매우 가볍다. 그것이 주택·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투기 수요를 부추기고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배경이 돼왔다. ‘코로나 저금리’ 국면의 집값 급등기에 공시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보유세 부담이 빠르게 늘어난 부분에 대해 ‘속도 조절’은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보유세 강화 기조를 박살 내겠다는 식의 정부 대응은 부동산 부자를 위한 것이지 결코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