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 대강당에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공청회'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부가 내년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해, 주택·토지 소유자들의 내년 보유세 등 세금 부담이 올해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현실화율 ‘역주행’은 특히 1가구1주택자보다는 다주택자, 같은 1주택 보유자 가운데는 중저가 주택보다 고가주택 보유자의 세부담을 더 많이 경감해주는 ‘역진적’ 감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공시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공청회를 통해 제시한 ‘공시가격 현실화율 수정·보완 방안’은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지난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애초 계획인 2023년 평균 72.7%에서 2020년 당시 평균 현실화율인 69.0%로 낮아진다. 공시가격대별로 세분해보면, 9억원 미만 주택은 70.0% → 68.1%, 9억원 이상 15억원 미만 주택은 78.1% → 69.2%, 15억원 이상 주택은 84.1% → 75.3%로 하향조정된다. 2023년 1월1일 현재 시가(적정시세)가 20억원으로 산정된 아파트가 있다고 가정하면, 애초 내년도 공시가격은 현실화율 84.1%를 적용할 경우 16억8200만원이지만, 이번 조처로 인해 현실화율 75.3%를 적용한 15억600만원으로 낮아지게 된다.
이처럼 공시가격이 낮아지면 내년도 세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계층은 다주택 및 고가주택 보유자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다. 이번 방안이 시행되면 시가 15억원 이상 고가주택은 현실화율 인하 폭이 가장 크고, 반대로 시가 9억원 미만 주택은 현실화율 인하 폭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또 최근 금리 상승과 부동산경기 침체 여파로 집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고가주택의 낙폭이 큰 상황이어서, 내년도 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은 올해보다 큰 폭으로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지난해 집값 급등에 따른 1주택자 세부담 증가 완화를 위해 올해 6월1일 기준 1가구1주택자는 올해분 재산세·종합부동산세 산정 때 한시적으로 1년 전인 2021년 공시가격을 적용받았다. 1가구1주택자는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춘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세 부담 인하 폭이 적을 것이라는 뜻이다.
자문위원회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출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로 최근 실거래가와 공시가격의 ‘역전’ 현상을 지목했다. 서울의 일부 고가 아파트 단지에서 최근 실거래가가 해당 주택의 공시가격보다 낮아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역전은 일부 고가 아파트의 ‘급급매물’ 거래에서 나타난 극히 예외적 현상이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지적이다. 올해 공동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평균 71.5%로, 이론적으로 집값이 30% 가까이 하락해야 ‘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돼 있다. 그러나 서울지역 아파트 매맷값은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2.89% 하락(한국부동산원 통계)에 그치고 있으며, 하락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실거래가도 올해 1~9월 변동률은 -7.0%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집값 하락기 국민들의 세부담 완화가 필요하다면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아니라 부동산의 과표를 정할 때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이나 세율을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은 “정확한 가격 산정으로 공시가격의 신뢰도를 높여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일시적인 부동산 시장 변동을 이유로 공시가격을 함부로 낮춘다면, 공시제도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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