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28일 종로구 흥사단에서 일본 교과서 검정 결과 긴급 검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일제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설명하는 내용은 더 줄어들고,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왜곡은 더욱 강화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를 한국이 알아서 배상하기로 하는 등 일본에 ‘백기투항’ 외교를 하고 ‘성의’를 기다렸는데, 돌아온 결과다. 우리가 알아서 먼저 내어주면, 일본도 호응할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문제는 이번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우려가 점점 커진다는 점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내년부터 사용할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사회 교과서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강제성 기술이 2019년 검정 때보다 더욱 후퇴했다.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에 ‘지원해서’라는 말을 새로 추가해 ‘징병’이 강제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식으로 바꿨다.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부당한 영유권 주장도 거의 모든 교과서에 실렸다. 일본이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왜곡된 주장을 주입하는 것은 한일관계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내어 “깊은 유감”을 표하고, “강력히 항의”한다고 했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고, 이전에도 정부 대응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선의’만 기대하며 윤 대통령이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를 서둘러 줘버린 터라, 이젠 뭐라 대응하기도 어려운 옹색한 처지로 스스로 내몰린 탓이다. 한국이 지난 6일 발표한 ‘정부 해법’은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스스로 부정하고, 강제동원이 ‘강제성을 지닌 불법 행위가 아닌 일상적 노무동원’이란 일본 쪽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주장하는 일본의 안보문서 개정에 대해 윤 대통령이 “일본 쪽 입장을 이해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이처럼 과거사, 독도 문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먼저 일본에 명분을 쥐어주며, 일본의 부당한 조처에 대응할 외교 원칙을 허물어뜨려 버렸기에 이번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 더욱 뼈아프다.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관계를 개선했다고 자화자찬해온 것과는 너무나 다른 냉엄한 현실이다. 앞으로도 일본군 위안부·후쿠시마 오염수, ‘초계기 레이더 조사’ 등 한일 현안에서 일본이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고, 한국은 쩔쩔 매는 굴욕외교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