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검정을 통과한 도쿄서적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전쟁과 조선 사람들’ 부분의 사진 설명에서 이전 교과서에선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서술했지만, 이번엔 ‘지원해서’라는 말을 새로 추가했다. ‘징병’이 강제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제공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공개한 2024년부터 일본에서 사용하게 될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검정 결과를 자세히 보면, 지난 역사적 과오를 최선을 다해 망각하려는 일본 정부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이번 검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악’은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이뤄진 조선인 ‘징병’ 사실을 애써 감추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이다. 도쿄서적의 6학년용 사회과 교과서를 보면, 짧게 머리를 자른 채 군복을 입고 한줄로 줄지어 앉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아래에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2019년 검정 통과본에 실려 있던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란 설명을 구태여 바꿔 “지원해서”란 표현을 덧붙인 것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시작된 뒤 일본은 1938년 2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해 그해 4월부터 군인이 되길 원하는 조선인 젊은이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선이 태평양으로 확대되며 병력 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1944년 만 20살이 되는 1924년 갑자년생 조선인 남성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도입하게 된다. ‘지원’이 ‘강제’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이 사진이 1938~1943년에 찍힌 것이라면 “지원”했다는 설명이 틀리지 않지만, 일본 정부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조선인 징병’의 역사를 애써 감추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일본의 교과서 기술이 이렇게 악화된 원인은 아베 신조 2차 정권 초기에 이뤄진 개악 조처 때문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4년 1월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표기하도록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개정해, 모든 초중고 교과서에 관련 기술이 포함되게 했다.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명한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전까진 ‘징용공’이란 표현을 쓰다가, 이후 강제성을 제거한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로 용어를 바꿨다. 2021년 4월에는 ‘강제노동’이라고 하면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이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을 각의 결정했다. 일본의 교과서 기술이 후퇴해왔고, 앞으로도 후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일본의 태도가 가장 명확히 드러난 것은, 윤석열 정부가 6일 양국 간 최대 현안이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일방적 ‘양보안’을 내놓은 뒤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후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한국의 양보에 호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한-일 공동선언에 담긴 지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어구는 생략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지게 해선 안 된다”는 2015년 8월 아베 담화의 노선에 충실한 대응이자,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지난 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는 윤석열 대통령의 요청에 일본이 냉담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