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오는 14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진상규명 청문회’ 이후,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부 대책의 밑그림은 한마디로 엄벌주의 강화다. 중대한 학교폭력의 경우 현행 최대 2년인 학교생활기록부의 가해 기록 보존기간을 늘리고, 가해 기록을 대입 수시 전형뿐 아니라 정시 전형에도 반영하는 방안이 핵심적으로 담길 것으로 보인다.
초4~고2 재학생 14만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한국교육개발원) 결과를 보면, 과거와 다르게 언어폭력(69.1%)이 신체폭력(27.3%)보다 월등히 비중이 높다. 또 학교폭력 발생 원인으로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66.4%)를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학교폭력의 유형과 성격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피해를 당했지만 ‘(피해 후 조치와 관련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응답이 22.9%(고등학교 35.2%)에 이른다. 학교폭력을 당한 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중도 응답자의 15.5%나 된다. 학교폭력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쉽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후 조처는 미흡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그에 따른 정교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정부는 ‘가해 학생에 대한 엄정 조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에서, 피해 학생은 학업을 중단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가해 학생은 버젓이 서울대에 입학했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성난 여론에 즉자적으로 부응하기 위한 의도는 아닌지 묻고 싶다.
엄벌주의는 당장 대책으로 내놓기 쉬울지는 모르겠으나, 향후 벌어질 부작용과 한계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한다. 이는 가해 학생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켜 소송 증가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피해 학생의 고통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해자 회복과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시급한 대책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지금은 학교폭력이 발생한 뒤 피해 학생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재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 가해 학생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 학생과 소통하도록 지원해 또 다른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과 같은 교육적 해법 찾기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