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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경찰 안이한 대처·국회 입법 공백, 교제살인 못 막았다

등록 2023-05-29 18:00수정 2023-05-30 02:38

교제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지난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교제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지난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서울 금천구에서 40대 여성이 교제하던 남성에게 폭행 피해를 입은 뒤,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보복살인을 당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의 폭행 신고로 가해자를 불러 조사를 하고도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고 이들을 돌려보내 귀가한 직후 참변이 벌어졌다. 교제폭력에 대한 경찰의 안이한 대처와 국회의 입법 공백이 부른 비극이다.

과거에 비해 신고가 늘어난 탓도 있겠으나, 교제폭력은 매우 만연한 상태다. 경찰청의 교제폭력 검거 인원 추이를 보면, 2015년 7692명에서 지난해에는 1만2841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루에 35명꼴이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보복살인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경찰의 대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기 쉬운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체크리스트에 ‘스토킹·가정폭력·데이트폭력 범죄’와 관련한 10개 문항이 추가됐지만, 이번에도 보복살인 피의자의 범죄 위험성은 ‘낮음’으로 나왔다. 교제 관계에 있던 피해자의 진술과 체크리스트만으로는 실제 범죄 위험성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동거 생활을 해왔고 피해자가 보복범죄를 유추할 수 있는 협박문자를 받은 것까지 확인했지만, 경찰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교제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낮은 탓이다.

또 근본적으로 현행법상 교제폭력에 대한 보호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가 보복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있을 경우, 접근금지와 유치장·구치소 유치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다. 그러나 교제폭력에 관해서는 별도 입법도 없고, 가정폭력처벌법에 교제 관계 피해자도 보호하도록 하는 법 개정도 지지부진하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교제 관계 피해자도 가정폭력 피해자와 동일하게 보호하고 있다.

그동안 국회에선 교제 관계의 범위를 법으로 정의하기 어렵고 단순 친구 관계를 배제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사귀고 있는 ‘친밀한 관계’로 정의하고 필요시 교제 관계를 증명하도록 하는 등 방안은 강구하면 될 일이다. 더불어 교제폭력 특성상 피해자가 본인에게 닥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 ‘반의사불벌죄’(피해자 의사에 반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조항)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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