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ㄱ씨가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교제 폭력 신고에 불만을 품고 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ㄱ(33)씨가 지난 28일 구속된 가운데, 경찰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실혼 관계’였다는 점을 고려하거나 가해자의 스토킹 혐의에 집중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라는 전문가 비판이 나왔다.
29일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시비에스>(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순간, 현행법상 적용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 조치를 상당히 지양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며 “피해자 보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률이 있음에도 적용을 안 하면 피해자 보호가 안 된다”고 말했다.
ㄱ씨는 지난 26일 아침 7시17분 서울 금천구 시흥동 한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연인인 ㄴ(47)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사실혼’ 관계로 보거나 사건 전 가해자의 스토킹 혐의에 집중했다면 보다 적극적인 보호 조처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접근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방법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제 폭력은 별도의 보호 조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법의 빈틈’으로 발생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교수는 “나이 차이가 10살이 넘게 나고 가해자 남성이 여성의 집에서 일주일에 며칠씩 ‘반동거’를 했던 1년간의 관계가 사건 초기에 고려 됐어야 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21일에 이 남자가 여성의 집에서 쫓겨났다. 이후 25일까지 이 남자는 여성의 집 근처 피시(PC)방을 전전하며 여성을 스토킹했다”며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가 있었으면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하면 되는 거였다”고 했다.
가해자 ㄱ씨는 피해 여성 및 어머니와 함께 같은 집에서 일주일에 1~2일 지내는 관계였지만, 경찰은 사실혼에 가까운 동거 생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경찰은 폭력 신고를 접수한 뒤 피해자가 “ㄱ씨의 처벌과 귀가보호 조치를 원하지 않는다. 연인관계이지만 결혼할 생각이 없다. 생활비도 같이 쓰지는 않으며, 한번 집을 나가면 오래 나갔다가 가끔 들어온다”는 진술에 근거해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해 분리조치를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도 자기에게 위험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잘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무서움에 떠는 여성들의 의사가 100% 자의라고 전제하고 접근하는 태도, 자의니까 결국 네 책임이고 사법기관은 개입 안 해도 된다, 피해자가 원해서 그렇게 된 거다, 이런 태도를 고치려면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뜻한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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