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말 기준 뱅크오브아메리카·바클레이스·제이피모건 등 8개 외국계 투자은행의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평균 1.9%로 집계됐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계속 하향조정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전망치도 1%대로 떨어진 것이다. 2년 연속 1%대 성장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14일 집계한 것을 보면, 골드만삭스(2.6%) 등 3개 투자은행은 2%대, 노무라(1.5%) 등 5개 투자은행은 1%대 성장을 점쳤다. 6월 말 기준 집계 때는 평균 2.0%였는데, 이번 집계에선 1.9%로 0.1%포인트 떨어졌다. 정부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 2.4%와 갈수록 차이가 커져가고 있다.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깨뜨리고 있는 것은 비중이 매우 큰 반도체 업종 경기의 회복이 늦어지고,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시장이던 중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1%대 초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성장률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 말고는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2년 연속 1%대 성장에 머문다면 경제주체들이 더욱 움츠러들면서 경제 활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도 우려된다.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지 않게, 신중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말 국회에 보낸 2023년 예산안을 짤 때,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2.5%로 내다봤다. 그러나 예산심의가 이뤄지던 11월에 한국은행이 전망치를 1.7%로 낮출 만큼 상황이 나빠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규모 감세를 단행하고, 성장률을 0.2%포인트 깎아먹을 만큼 정부 지출 증가율을 억제하는 방침을 고수했다. 올 들어 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지만, 정부는 재정을 통한 경기 대응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국회 승인을 받은 지출이라도 제대로 하려면 국채 발행을 늘리는 세입 경정 추가경정예산안이라도 편성해야 할 텐데, 이 또한 회피하고 있다.
전 정부 경제정책 공격에 쓰고 있는 ‘재정 건전성’에 대한 잘못된 집착은 내년 예산 편성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내년에도 감세 기조를 이어가고, 정부 지출 증가율도 올해(5.1%)보다 낮춰 3%대를 목표로 예산안을 짜고 있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성장 잠재력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인데, 윤석열 정부에선 그런 정부의 구실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는 ‘무정부 상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