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제막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표지석.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육군 제공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세워진 독립영웅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들의 흉상은 2018년 제99주년 3·1절을 맞아 우리 군 장병들이 사용한 5만발 분량의 소총 탄피를 녹여 만든 것이다.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해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 현관 앞에 설치했다. 그런데 불과 5년여 만에 이를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육사는 “흉상을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대고 있다. 그러면서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이라고 하니, ‘철거’가 목적인 셈이다. 육사 생도들이 독립영웅들의 애국심과 독립 투혼을 본받고 국가관과 역사관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교육 목적으로 장병들의 정성을 담아 만든 흉상이 아닌가. 이승만 정권 초기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일본군과 괴뢰 만주군 출신 장교들을 대거 기용한 탓에 우리 군이 독립군과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가려진 건 아픈 역사로 남아 있다. 이제라도 군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상징적 조처였는데, 왜 멀쩡히 교정에 서 있는 흉상을 들어내겠다는 건가. 육사 생도들이 보면 안 된다는 말인가.
더욱 기가 막히는 건 독립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한 자리에 친일 전력자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흉상을 설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 대장은 1943~45년 항일 무장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설립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이에 근거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정했다. 가당치도 않다. 육사 쪽은 이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 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새로운 흉상 대상을 검토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의가 수상할 따름이다.
윤석열 정부는 갈수록 극우 뉴라이트 관점에서 역사를 재단하는 행태를 강화하고 있다. 국가보훈부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한 일이 지난달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 적힌 ‘친일반민족행위자’ 표현 삭제였다. 이번 일 또한 그 일환이다. 그러나 독립 투쟁의 역사 자체를 지우려는 건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명토 박은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군의 정통성마저 이념 갈등 소재로 끌어들이는 반헌법적 행태를 즉각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