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국군 의장대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묘역으로 옮기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육군사관학교(육사)가 교내 독립영웅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을 철거해 외부로 옮기고, 대신 일제 만주군 출신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운동가 기념사업 단체들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처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육사는 25일 한겨레에 보낸 입장문에서 “육군사관학교는 군의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는 교내 다수의 기념물에 대해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그중에서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2018년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 이에 육사는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육사는 독립기념관에 흉상 보관, 전시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육사 내 독립군‧광복군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은 2018년 제99주년 3‧1절을 맞아 우리 군 장병들이 사용한 5.56㎜ 소총 5만발 분량의 탄피 300㎏을 녹여 만든 것이다. 당시 육사는 “총과 실탄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음에도 봉오동‧청산리 대첩 등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며 조국독립의 불씨를 타오르게 한 선배 전우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탄피를 재료로 흉상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육사는 독립군·광복군 흉상을 학교 밖으로 옮기면 일제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를 지낸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 입장문에서 “육사 교내에는 학교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 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생도 교육 차원에서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도록 생도들이 학습하는 충무관이라는 건물 전체(지하~4층) 복도와 로비 등에 국난극복의 역사(고대~현대) 전체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2018년 3월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제막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표지석.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육군 제공
군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한겨레에 “육사에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 장군은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협력했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 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고 돼 있다. 백 장군 자신도 자서전에서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썼다. 이에 육사 관계자는 “여러 인물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검토 기준은 육사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기념 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홍범도장군‧우당이회영‧신흥무관학교‧백야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독립기념관 관계자를 통해 육사가 어제(24일) 독립전쟁의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전시 또는 보관이 가능한지 검토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독립전쟁의 역사를 지우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를 당장 멈추라”고 비판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육사가 독립군의 역사를 받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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