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집회시위 인권침해감시 변호단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을 규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정부가 심야 시간대(0~6시)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고 출퇴근 시간대 주요 도로의 집회·시위를 제한·금지하겠다고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1일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훼손하는 위험한 발상으로,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기존 판단과도 배치된다.
심야 시간대 집회 금지는 헌재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헌재는 2009년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야간에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한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0~6시 집회 금지’는 이미 위헌으로 판정된 규제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위헌적 행위다. 지난 19일에도 법원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진행되는 심야 노숙 집회를 금지한 경찰 처분에 대해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자유인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야간 시위에 대해서도 헌재는 2014년 ‘일몰부터 자정까지’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며, ‘자정 이후’ 규제는 국회가 결정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시위 주최자나 참가자의 자유를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하는 방법을 여러 방향에서 검토해야 한다”며 시간을 기준으로 규제하는 법률 조항의 입법 개선 등을 요청했다. 심야 시간대 시위도 일률적 금지는 바람직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출퇴근 시간대 집회·시위 제한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이미 교통 혼잡을 이유로 출퇴근 시간대 집회·시위를 빈번히 제한하고 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민주국가에서 이렇게 특정 시간대 집회·시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집회·시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자유는 집회·시위의 자유에서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집회·시위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는 군사독재의 유산이다. 그동안 헌재와 사법부가 헌법 원칙에 따라 집회·시위의 자유를 꾸준히 확장하면서 민주국가에 걸맞은 제도를 갖춰가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시대 흐름을 역행해 대통령실 인근 집회를 금지하는 등 집회·시위의 자유를 계속 옥죄고 있다.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더 퇴행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나서 집회·시위를 제한하고 강경 처벌 방침을 밝히는 건 독재 국가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