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12일(현지시각)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승희 의전비서관(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김승희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이 솜방망이식으로 무마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석달 전에 김 비서관의 초등학교 3학년 딸이 방과 후 2학년 학생을 화장실로 데려가 리코더와 주먹으로 폭행해 전치 9주의 상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학교폭력 심의는 두달이 지나서야 열렸고, 피해 학생 부모는 가해 학생의 강제 전학을 요구했지만 학급을 교체하는 처분만 내려졌다고 한다. 이날 의혹이 불거지자, 김 비서관은 곧바로 사표를 제출하고 대통령실은 이를 즉각 수리했다. 사안의 심각성에 견줘 이렇게 경미한 처분에 그친 이유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 서둘러 ‘꼬리 자르기’식으로 덮을 사안이 아니다.
김 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대학원 동문이자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로 자격 시비가 일었던 인사다. 그럼에도 지난 4월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서 비서관으로 승진해 주목을 받았다. 김 비서관의 대통령실 권력 배경이 학교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 작용했다면 전형적인 권력형 비위인 셈이다. 학교장이 긴급조처로 가해 학생의 출석 정지를 내린 날 김 비서관 부인은 에스엔에스 프로필 사진에 김 비서관이 윤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을 올렸다고 한다. 이런 행위가 이후 학교폭력 심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는 의구심이 이는 건 당연하다. 전치 9주의 상해를 입혔는데도 김 비서관 부인은 ‘사랑의 매’라고 표현했다니, 위세가 대단하다.
대통령실은 이날 김 비서관에 대해 공직기강 조사에 착수하고 21일 시작되는 중동 순방에서도 배제했다. 그러나 이 사안을 사전에 인지하진 못했다고 해명했다. 사전에 알고도 묵인했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할 때까지 몰랐다는 것도 공직기강 관리 차원에서 커다란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실은 의혹 제기 당일 사표 수리까지 신속히 이뤄졌다며, “엄중하게 대응하려는 차원”이라고 했다. 서둘러 사퇴시켜 의혹을 규명하지 않도록 사안을 덮어버린다면 그건 ‘엄중’이 아니라 ‘은폐’다. 대통령실은 “언니가 무섭다”는 피해 어린이와 그 부모의 심정을 만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는가.
현 정부 들어 불거진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등 주요 공직자의 자녀 학교폭력은 과거 행적 인사검증 차원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권력형’이라 그 심각성이 다르다. 명확히 진상을 밝히고 반드시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