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쇠고기 협상은 역시 ‘방미 선물’이었나 보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워싱턴 이명박 대통령 숙소에서는 자정에 긴급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새벽까지 계속된 회의가 끝날 무렵, 일주일째 줄다리기를 해 온 서울의 협상단에서는 “오늘은 타결될 것 같다” 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새롭게 밝혀진 한-미 쇠고기 협상의 막전막후는 이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전날 ‘정치적 결단’으로 양보를 해 협상을 타결지었다는 정황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방문에 앞서 협상이 타결될 필요가 있다며 협상 내용을 일일이 점검했다고 한다. 당시 방미단 내부에서는 “협상은 타결된다”는 얘기가 돌았으며, 공식 발표 전에 협상 타결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어제 “광우병 얘기하는 사람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도 쇠고기 협상과 자유무역협정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이 협상이 아니라 양보였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도 인정했다. 민심에 떼밀린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협상에서는 광우병이 발병해도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판정 등급을 낮추기 전까지는 수입을 계속하기로 했다. 정부의 새로운 방침은 국민 건강을 위해 당연한 조처지만, 협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정부는 수입 중단의 근거로 가트(관세및무역 일반협정) 조항을 들고 있지만 미국과의 특별법이 우선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 실효성이 없다면 위기를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는다. 가트 조항을 근거로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면, 왜 우리만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 중단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손발을 묶었단 말인가.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나라의 협상을 지켜보며 재협의를 하겠다는 것도 줏대 없는 처사다.
핵심은 검역주권의 회복이다. 갖다 바치듯 협상을 한 탓으로 검역주권을 내줬고, 그래서 당연히 광우병 불안이 따르는 것이다.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할 게 아니라, 15일로 예정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 확정을 연기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 귀를 막고 고시를 확정하면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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