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일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고시하기로 한 날이다. 정부는 예정대로 고시를 하겠다고 한다. 문제를 바로잡는 유일한 길은 고시를 연기하고 재협상을 하는 것이다.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가트 및 세계무역기구 조항을 들며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한승수 국무총리의 성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원군을 만난듯 반색하며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한 만큼 검역주권 측면에서 보완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우리 정부가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한다 해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는 지난달 타결된 합의문 내용과 상충된다. 합의문에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국제수역사무국이 현재 ‘광우병 위험 통제국’인 미국의 지위를 낮출 경우에만 수입을 중지할 수 있다. 따라서 ‘광우병 발병시 수입 중단’ 조처에 대해 합의를 명문화하지 않으면 말로만 그칠 수 있다. 미국에서 특히 정권이 바뀌면 실행을 담보하기 어렵다.
슈워브 대표의 발언에 기대어 어물쩍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새로운 제안은 곧 협상이 무리한 내용으로 타결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한편, 재협상으로 명문화할 필요성이 있음을 입증한다. 검역주권과 관련되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구두합의로 됐다고 할 게 아니라 반드시 새로 합의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쪽 협상단은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 조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미국 쪽과 협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도축검사에서 불합격한 30개월 미만 소는 동물성 사료로 사용할 수 없도록 미국을 압박했다고 자랑했는데, 정작 미국은 30개월 미만 모든 소를 동물성 사료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강변하니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조류 인플루엔자가 전북 김제에서 발생한 이후 한 달 만에 서울까지 전국을 휘젓고 있다.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땅에 묻혀 양계업은 붕괴 위기를 놓였고 인체 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국이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기에 빚어진 ‘인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실한 쇠고기 협상과 조류 인플루엔자 대처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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