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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학생들에게 으름장 놓는다고 해결될 일 아니다

등록 2008-05-16 19:15

사설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주 경찰 정보과 형사가 수업 중이던 전주의 한 고등학교를 찾아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신고를 낸 학생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집회 신고를 낸 경위를 파악하려는 것이라지만, 정해진 절차를 거친 일을 따로 조사할 이유는 없다. 이런 게 바로 사찰이다.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경찰 조사를 받은 어린 학생이 위축감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된다. 실제 그는 조사 다음날 집회 신고를 취소했다. 정당하게 권리를 행사하려던 어린 학생을 경찰이 겁을 줘 가로막은 꼴이다. 곧,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표현의 자유를 경찰이 앞장서 침해한 게 된다.

경찰은 엊그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다니는 학교와 휴대전화 번호를 캐묻는 등 신원 파악에 나섰다. 역시 학생들을 압박하자고 벌인 일일 게다.

어청수 경찰청장부터 “(촛불집회의) 주최자를 색출해 사후에라도 처벌할 것”이라며 이런 압박에 앞장서고 있다. 경찰은 이미 누리꾼 21명의 신원 확인을 포털사이트에 요청해 두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 말로는, 이들을 어떤 법규 위반으로 처벌할지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당장 문제삼을 위법 사실이 딱히 없는데도 입부터 막으려 서두르는 모양새다. 한 판사의 말마따나 정부 정책이 맘에 들지 않아 반발하는 것을 형사처벌하겠다는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입을 다물라는 사실상의 협박으로 볼 수밖에 없다.

누리꾼들이 경찰청 사이트를 찾아가 실명을 대면서까지 ‘나를 처벌하라’고 너나없이 나선 것은 경찰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대한 통렬한 야유라고 봐야 한다. 국민의 입을 막고 눈과 귀를 가리려고 자의적으로 힘을 휘두르려는 데 대한 정당한 저항이기도 하다. 경찰이나 검찰이 이를 외면하고 실제 누리꾼 처벌에 나섰다간 더 큰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오늘 벌어질 촛불집회를 앞두고도 곳곳에서 이런 압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경찰 말고도 교육당국까지 나섰다. 집회에 참석하는 학생은 처벌하겠다는 경고가 나왔고, 교사들을 내보내 단속한다는 방침도 세웠다고 한다. 군사정권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입과 귀를 막는 게 국민과의 소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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