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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 햇발] 금융비리와 거악 척결 / 박순빈

등록 2011-06-16 19:05수정 2011-06-16 19:09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저축은행 사건에 연루된 거악은
검찰 수사로 척결하기 어렵다
진짜 거악은 회색지대에 건재한다
‘거. 악. 척. 결!’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현충일에 국민한테 밝힌 각오다. “저축은행 수사를 끝까지 수행해 서민 피해를 회복시키겠다”고도 했다. 이 다짐을 믿을 만한지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머릿속에선 자꾸만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 묻은 개가 떠오른다. 왜일까.

언어철학에선 거짓말의 개념이 둘로 나뉜다. 하나는 진위가 빤한 거짓말, 다른 하나는 긴가민가한 거짓말이다. 후자는 내뱉는 사람이 그 말의 진실성을 검증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애초부터 진실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미리 의도한 결론으로 이끌려고 내뱉을 뿐이다. 예컨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다’고 하면, 긴가민가한 거짓말이 된다. 귀신이 씻나락을 까먹는 모습을 보지도, 그 소리를 듣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김준규 총장은 정치권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움직임을 두고 “작은 부패는 처벌하고 큰 부패는 지나쳐야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상황”을 예고하며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긴가민가한 거짓말에 가깝다. 김 총장의 발언에선, 중수부가 폐지된 미래란 가상이다.

검사 출신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을 보면, 우리 검찰은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다가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하는 조직이다. 지금 검찰이 개과천선을 해 약자 편에 선다 하더라도 저축은행의 부정·비리에 연루된 거악을 척결하긴 어렵다. 서민 피해를 검찰 손으로 원상복구하겠다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금융권의 부정·비리를 척결하는 문제는 일차방정식이 아닌 고차연립방정식이다. 세계 어디서나 그렇다. 금융시장에선 부정과 부패의 고리가 그만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는 얘기다. 이 고리에선 사법적 잣대만으로는 처벌 대상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거악이 많다. 아무 죄의식 없이 긴가민가한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해온 이들이다. 경제범죄 전문가들은 이런 회색지대에 있는 ‘협잡꾼’들이 은행털이범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빤한 범죄자보다 방조 또는 묵인하는 힘있는 자들이 더 큰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예금자와 투자자, 납세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서도 척결되기는커녕 살아남아 더 센 권력을 거머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얼마 전 저축은행 부정·비리 사건의 성격과 관련해 “권력깨나 있는 자들이 서민 돈으로 잔치를 벌인 것”이라고 규정했다. 제대로 맥을 짚은 것 같다. 다만 ‘권력깨나 있는 자’의 범위가 문제다. 전·현 정권 구분 없이 적어도 이런 자들은 포함돼야 하지 않나 싶다. 저축은행의 고위험·고수익 추구 행위를 조장하거나 방조하고, 서민과 지역 자영업자한테 돌아가야 할 대출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으로 돌리도록 유도하고,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저축은행 피에프 대출의 부실 위험이 커졌는데도 다른 금융권으로 떠넘기며 구조조정을 미루고, 금융인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적 자격도 갖추지 못한 이들을 대주주나 임원으로 승인해주고, 금융감독원 검사요원들이 지난해 초 저축은행 현장검사에서 심각한 부실 상황을 파악해 보고했는데도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에 찬물을 끼얹을 것을 우려해 묵살한 자… 등등.

고객 돈을 횡령하거나 회계부정으로 고객에게 사기를 친 저축은행 대주주나 임직원, 이들에게 뇌물을 받아먹은 공직자 등을 처벌하는 일은 검찰 몫이다. 문제는 도처에서 활개치는 회색지대의 거악들이다. 이 거악들을 척결하지 못하면 미래의 저축은행 사태를 막지 못한다. 답답할 따름이다.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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