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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삶의 창] 앉다 혹은 서다 / 하성란

등록 2011-10-14 19:25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남자가 왜 앉아요? 여자예요?”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도 많다고
말해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매일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깨고 싶지만 실상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건 이웃 남자의 소변보는 소리다. 늘 같은 시간 기상하는 그는 밤새 참고 참았던 소변을 오랫동안 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십여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라 방음시설이 좀 부실한 탓도 있겠지만 아침 여섯시는 아직 고요할 시간이다. 지금처럼 겨울이 다가올 때면 사위는 그때까지도 어둑신하다. 발아래 쪽 천장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그 소리에 눈이 떠지면 맨 처음 드는 생각이 음, 별일 없으시군, 이다. 한번도 만난 적 없고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다행히 그는 건강하게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번 생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그 소리가 달갑지 않다. 어느 날은 불쑥 이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뭐야? 남자인 걸 자랑이라도 하는 거야?’ 당사자인 그도 그 소리가 자신의 집 문밖으로 샐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할 것이다.

직업적인 습관이랄까, 잠은 진작 달아나고 일어나기는 싫고 뒤척이면서 이런저런 연상들을 해본다. 그의 나이와 신장, 변기에 낙하된 뒤 튀어 사방에 흩어질 소변 방울들의 긴 여정이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우리의 예측과는 달리 소변 방울은 아주 멀리 튀어 변기 옆 세면대, 세면대 위에 나란히 걸린 우리 가족의 칫솔들에까지 튄다.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 건 어느 주말 저녁이었다. 우리 부부와 동생네 부부, 내게는 시숙이 되는 남편의 형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 회사 남자 직원 둘은 진작 앉아서 소변을 보고 있대.” 동생의 말에 와, 탄성을 지르려는데 말을 잘못 들었다는 듯 시숙이 끼어들었다. “뭐요? 남자가 앉아서 뭘 해요?” 그에게는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화장실 위생은 물론이고 잔뇨가 남지 않아 비뇨기 쪽의 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동생의 말에도 그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앉아서 소변을 보는 행위 자체가 남자이기를 포기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왜 앉아요? 여자예요?” 독일은 물론 일본의 많은 남자들 또한 그러고 있다고 우리나라의 유명한 배우도 그런다고 이야기를 해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가 불쑥 자신의 동생에게 물었다. “닌 할 수 있나?” 남편이 자신있게 말했다. “난 할 수 있다.” 시숙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쯤에서 우리는 화제를 바꾸었다. 이 문제도 어느 남자들에게는 종교의 문제처럼 타협의 여지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변보는 자세를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는 시숙에게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아주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더러워진 변기 청소는 늘 제가 해왔답니다.

이제 다섯살짜리 둘째가 혼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디서나 쉬 소리만 하면 우유병을 들고 득달같이 달려갔는데, 이젠 제 스스로 볼일을 본다. 그것이 기특하다고 며칠 두었는데 그 뒷감당이 쉽지 않다. 목욕탕 문 앞에 서서 바로 소변을 보는 통에 물을 뿌려도 금방 소변 냄새가 배었다. 타일 자국에도 소변 자국이 남았다. 몇번이나 변기에 가서 소변을 보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자신은 아직 키가 작아 변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변이다. 이 녀석 하는 걸 보니 오줌을 누면서 장난도 친다. 가까이에 있는 슬리퍼를 겨냥하기도 하고 조금 떨어져 있는 샴푸병을 겨냥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자고로 남자란 서서 소변을 봐야 한다고 생각이 굳어질지도 모른다. 서서 소변을 보는 일로 여자와 다르다고 또 하나의 잣대를 가질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도 나는 여전히 그 소리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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