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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삶의 창] 김대건 신부 유해 보존 유감 / 호인수

등록 2013-10-11 18:48수정 2013-10-11 18:50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꼭 6년 전 9월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도 될까, 한참 망설였다. 9월은 한국천주교회가 103위의 성인들을 위시한 1만위로 알려진(조광 교수는 과장된 숫자라고 한다) 순교자들을 특별히 기리고 공경하도록 제정한 달이다. 나는 그때, 가톨릭신학대학의 이기명 신부가 낸 자료집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골 현황>을 인용해서 이제라도 천주교회는 순교자들의 유해 보존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칼럼이다. 한데 나의 제안이 교회의 지도자나 전문가들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보였나 보다. 암만 생각해도 허황된 소리는 아닌 듯한데 교회는 매년 순교자의 달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면서도 지금껏 무슨 조처는커녕 숙고하는 작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냉소를 각오하고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내던져버리면 더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순교한 1846년 9월에 한강변 새남터 모래밭에서 안성 미리내로 이장되었고 1901년 5월에 다시 서울 용산 신학교로 이장돼, 전쟁 때 경남 밀양으로 피난했다가 1953년 휴전 후에 서울 혜화동 소신학교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1960년 7월5일의 처사다. 서울교구의 담당자들이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3등분해서 굵은 뼈들은 대신학교(현 가톨릭대학 신학부)로, 하악골은 미리내 경당으로, 치아는 절두산 순교기념관으로 분리 안치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신학교에 안치된 유해들은 더 작게 쪼개져서 사방으로 분배되었다. 서울교구로부터 조각을 받아 모셔간 본당이나 기관들이 141곳에 달하며 샤르트르 성바오로수녀원에서 분배한 유해는 자그마치 200개가 넘는데 그중 일부는 일본과 미국에까지 보내졌다. 담당자였던 장복희 수녀에 의하면 유해들이 순교자 현양과 기도를 위하여 서울교구의 지시대로 성광(성체 등 귀한 것을 담아 보관하는 전례용기) 비슷한 함에 넣어 봉인·분배되었다 한다. 장 수녀의 고백이다. ‘나는 더는 유해 보관 및 분배 작업을 맡고 싶지 않다. 이유는 성인의 뼈를 조금씩 자른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고 못할 짓으로 여겨지고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기에 여럿이 나눠 기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이라도 남은 유해를 한곳에 모아 큰 유리관에 봉안하여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자료집 62쪽) 아,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

서울교구의 의도는 분명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현양하고 기도하기 위해서다. 한 조각이라도 가까이 모셔놓아야 더 효과적인 현양과 기도가 된다고 판단했던 거다. 그렇다면 세계화되어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들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더 극진히 모시기 위해서라면 유골을 몇등분해서 나누어 가져도 좋단 말인가? 전쟁이나 불의의 사고로 시신이 갈가리 찢어졌더라도 정성껏 한데 모아 형체를 갖추어 장사를 지낸 다음, 그곳에 모여 고인의 뜻을 새기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의 도리이거늘 어쩌자고 한국천주교회는 고귀한 순교자의 유해를 갈가리 찢어 현양이라는 명목 아래 나누고 나팔을 불며 짊어지고 다니는가?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건 아닐까? 오로지 조국과 백성을 위해 바친 순교자의 삶과 정신을 본받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니 우리는 유해 앞에 엎드려 당신들 공덕의 대가로 흘러나오는 복이나 한 줌씩 챙기겠다는 전형적인 기복신앙의 표출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작금의 한국 천주교회는 무엇을 성찰하고 반성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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