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가 27일 시작되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많은 게 현실이다. 검찰 수사 전에라도 국회에서 핵심 의혹을 풀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많은 국민의 일치된 생각일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국정원의 자료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료 제출과 증인 채택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청문회 대신에 일반 상임위 회의에서 보고와 질의를 하는 식으로 국회 조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사실상의 청문회’라고는 하지만, 평소에도 매우 폐쇄적인 국정원이 얼마나 자료를 내놓고 증인 요청에 협조할지 극히 불투명하다.
당장 27일 국회 정보위 회의에서 국정원은 자살한 임아무개 과장의 삭제된 컴퓨터 파일 복원 내용을 보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복원 내용을 모두 제출할지도 의문이거니와, 설령 그렇더라도 의혹의 당사자가 복원한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쉽지 않다. 새누리당은 ‘정부기관이 제출한 자료를 왜 믿지 못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동안 국정원이 보인 사찰과 정치개입 행태를 보면 다수 국민이 국정원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불신의 고리를 끊고 의혹을 잠재울 수 있는 첫 단추는 국정원 스스로 먼저 끼워야 한다. ‘국가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로 자료 제출 범위를 제한할 게 아니라, 국민이 궁금해하는 의혹을 모두 풀어준다는 자세로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고, 직원들을 정보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라도 출석시켜야 한다. 특히 국정원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이 요구한 해킹 프로그램의 로그파일 원본 등 33개 자료를 즉시 국회 정보위에 내놓아야 한다. 새누리당도 이제까지 말해온 것처럼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자료를 제출하는 것을 반대해선 안 된다. 자료 제출에 늑장을 부리면 국회 조사활동을 무력화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국민의 의혹과 불신은 더욱 커질 뿐이란 점을 청와대와 국정원,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국회 조사 과정에선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 가운데서도 국민이 우려하는 몇 가지 핵심 사안에 힘을 모으는 게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원이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해킹 프로그램을 민간인 사찰에 활용했느냐 여부다. 인터넷에 유출된 이탈리아 해킹팀 서버 기록을 통해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을 정황은 이미 드러났다. 국정원이 해킹용 스파이웨어를 유포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까지 감염됐을 가능성은 없는지도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설령 ‘대북 첩보수집 활동’에만 활용하려 했다는 국정원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언제든 다른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이런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진실 규명과 함께, 국정원 간부들에 대한 엄정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 수집’을 내걸고 언제든 개인 프라이버시를 유린할 수 있는 현대 정보기관의 무분별한 폭주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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