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7일 국회 정보위에서 해킹 사찰 의혹에 대한 해명을 시도했지만, 의혹을 해소하기엔 한참 모자란다. 되레 또 다른 의문과 의혹이 꼬리를 문다.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여전하다.
국정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씨에게 이번 일을 뒤집어씌우려는 심산인 듯하다. 국회에서 국정원은 “임씨가 숨져 전모를 알 수 없다”거나 “임씨가 모든 걸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드러난 사실과 어긋나는 억지 주장이다. 해킹 프로그램을 판매한 이탈리아 업체와 국정원 사이에 오간 이메일 등을 보면 국정원 쪽 관련자는 적어도 4~5명이다. 사용자가 5명이라는 기록도 여럿이다. 국정원에서 해킹 프로그램을 운용한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운영진 여럿이라고 보는 게 여러 정황과 사리에 맞는다. 더구나 국정원 말대로 임씨가 전산기술자였다면, 공작이든 실험이든 필요에 따라 해킹을 요청한 부서가 따로 있을 것이다. 그쪽 부서와 임씨 부서의 실무자나 상급자 등 상황을 알 만한 직원이 여럿일 텐데, 국정원은 죽어 말 못하는 임씨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임씨가 삭제한 해킹 관련 자료가 51건이고 대부분 국정원 자체 실험용이라는 해명은 더 믿기 어렵다. 그 정도 파일 복구는 기술적으로 1~2분도 안 걸릴 일이라는데 국정원이 일주일 만에야 복구했다고 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무엇보다 임씨가 삭제했다는 파일이 국정원이 관리해온 해킹 타깃의 전부인지 알 수 없다. 민간인을 겨냥한 다른 타깃이 훨씬 많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과 실제 그럴 가능성이 있는데도 국정원은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국정원이 각종 선거 직전에 해킹용 도구 증설을 업체에 요청한 사실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의혹이다. ‘자체 실험용’이라는 국정원 주장은 곳곳에 풀리지 않는 의혹만 남길 뿐이다.
의문은 꼬리를 문다. 승진으로 부서가 달라졌다는 임씨가 몇 달 전의 근무 부서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삭제하는 것이 보안에 철저하다는 국정원에서 가능한 일인지 의아하다. ‘기술자일 뿐’이라는 임씨가 ‘별것 아닌 해킹 프로그램 실험’ 사실이 드러났다고 목숨까지 끊어야 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믿으라’고만 하는 국정원의 말만으로 끝낼 일은 이미 아니다. 국회는 ‘사실상의 청문회’의 한계를 인정하고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나 검찰 수사로도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면 특별검사 동원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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